세르게이 마트베예비치 시테멘코

Сергей Матвеевич Штеменко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1907–1976 ○ 자연사

스탈린의 작전지도를 설계하고 두 번 몰락한 참모장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 시테멘코는 스탈린을 수행해 매일 아침 전황을 브리핑했다. 스탈린이 연합국 수뇌들 앞에 펼쳐 보인 작전지도는 시테멘코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세르게이 시테멘코는 스탈린 시기 소련군 작전기획의 핵심이자 최연소 참모총장을 지낸 군사 엘리트였다. 돈 카자크 출신으로 1926년 붉은 군대에 자원입대, 포병·기갑 장교를 거쳐 참모로 성장했다. 독소전쟁 중 작전총국장으로서 스탈린그라드·캅카스·벨라루스·만주 작전의 구체적 기획을 주도했고 테헤란 회담에서 스탈린을 수행했다. 1948년 41세에 참모총장이 되었으나 1952년 경질되고 베리야 연루로 강등되었다. 1968년 바르샤바 조약 연합군 참모장으로 복귀해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지휘했고, 회고록 『전쟁 시기 참모본부』는 소련 군사사의 고전이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2–1953년의 몰락: 스탈린의 해임과 베리야의 그림자

시테멘코의 첫 몰락은 스탈린 생전에 시작되었다. 1952년 6월, 4년간 참모총장을 지내온 그가 갑작스레 해임되어 소련군 독일주둔군 집단 참모장으로 좌천된 것이다. 스탈린은 바실렙스키에게 "시테멘코가 자꾸 당신을 헐뜯는 보고를 올려서 해임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해진다(시모노프 『내 세대의 눈으로』에 인용된 바실렙스키의 증언).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 직후, 시테멘코는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다시 참모차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해 6월 베리야가 체포되자 운명은 급변했다. 불가닌 국방장관은 시테멘코가 "베리야를 통해 스탈린에게 군 지도부에 대한 중상모략을 전달했다"고 비난했고, 1953년 6월 29일 시테멘코는 육군대장에서 중장으로 두 계급 강등되었다. 이는 소련군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징계였다.

절박해진 시테멘코는 1953년 7월 23일 흐루쇼프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저는 27년간 정직하고 성실하게 복무했습니다. 당의 결정은 법이지만, 베리야라는 악당 때문에 제 공산주의자로서의 명예에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그는 1942년 캅카스에서 베리야를 처음 만난 경위부터 소상히 해명하고, "한 번도 베리야에게 어떤 군 지도자에 대한 사적인 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를 구하지 못했고, 그는 시베리아 군관구 참모장으로 좌천되었다.

흥미롭게도 시테멘코는 1953년 초 스탈린 말년의 '의사들의 음모' 사건에서 희생자 명단에 올라 있었는데, 스탈린의 갑작스런 죽음만이 그를 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베리야의 몰락은 그를 살렸지만, 동시에 그의 경력을 거의 파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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