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변증법』에서 성 계급의 철폐와 재생산 수단의 장악을 주장한 미국의 급진 페미니스트
1970년 『성의 변증법』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론을 성 자체에 기초한 역사관으로 넓혀, 여성 억압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세인트루이스에서 자란 미국의 급진 페미니스트 저술가·활동가. 정통파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고, 시카고 미술 학교를 나왔다. 1967년 시카고에서 참정권 운동 이후 첫 독자적 여성 해방 모임 「웨스트사이드」를 세우고, 뉴욕으로 옮겨 「뉴욕 급진 여성」, 「레드스타킹스」, 「뉴욕 급진 페미니스트」를 차례로 함께 세웠다. 1970년 『성의 변증법』에서 경제 계급의 철폐에 프롤레타리아의 생산수단 장악이 필요하듯 성 계급의 철폐에는 여성의 재생산 통제 장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큰 논쟁을 낳았다. 운동에서 물러난 뒤 조현병을 앓았고, 2012년 뉴욕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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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970
독립 활동대표
사회운동·조직
웨스트사이드에서 『성의 변증법』까지
1945년 1월 7일 오타와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온 독일계 유대인 난민 케이트 와이스와 브루클린 출신 외판원 솔 포이어슈타인의 딸로 태어났다. 집안은 성을 파이어스톤으로 바꾸고 세인트루이스로 옮겼고, 부모는 정통파 유대교도였다. 워싱턴 대학을 거쳐 시카고 미술 학교에서 1967년 회화 학위를 받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인종평등회의 지부의 조직가로 일했다.
1967년 시카고 신정치 전국회의에서 조 프리먼과 함께 혼인·재산법의 평등과 여성의 몸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냈으나 토의에 부쳐지지 않았다. 둘은 회의 뒤 참정권 운동 이후 첫 독자적 여성 해방 모임인 「웨스트사이드」를 세웠다. 그해 10월 뉴욕으로 옮겨 「뉴욕 급진 여성」을 함께 세웠고, 1969년 엘렌 윌리스와 「레드스타킹스」를, 그해 말 앤 코트와 「뉴욕 급진 페미니스트」를 세웠다가 1970년 6월 떠났다.
1970년 9월에 나온 『성의 변증법: 페미니즘 혁명을 위한 논거』는 성 자체에 기초한 유물론적 역사관을 내세웠다.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엥겔스에 기대면서도 그들이 계급과 독립된 여성 억압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고 비판했고, 경제 계급을 없애려면 프롤레타리아가 생산수단을 장악해야 하듯 성 계급을 없애려면 여성이 재생산 통제를 장악해야 하며, 페미니즘 혁명의 최종 목표는 남성 특권만이 아니라 성 구별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고 썼다. 인공 재생산과 아이의 집단 양육을 주장한 이 책은 큰 논쟁을 낳았고, 앤절라 데이비스는 이 책이 인종·계급 억압을 성차별의 연장으로 환원했다고 비판했다.
운동에서 물러난 뒤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마지막 책은 정신 질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집 『공기 없는 공간들』(1998)이었다. 2012년 8월 28일 뉴욕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