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해체 직전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마지막 제1서기
1990년 6월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로 선출된 직후 중앙위원회에서 한 연설: "우리는 당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절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우크라이나를 정치적 실험의 장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기계공학자 출신으로 도네츠크 기계제작공장에서 기술자로 출발해 공장장까지 오른 테크노크라트였다. 1976년 당 관료로 전환하여 우크라이나 공산당 도네츠크 주당 위원회 서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을 거쳤으며,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국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피해 수습에 참여했다. 1990년 6월 고르바초프의 신임 속에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와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에 올랐으나, 이듬해 8월 쿠데타 실패 직후 당 활동이 금지되면서 사임했다. 소련 해체 후에도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과 경제정책위원장을 지내며 구 공산당 계열 정치세력의 재편을 주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90–1991 정치·당 지도 · 소련 · 당 최고 지도자
경력 연표
- 1958–1976도네츠크 기계제작공장 기술자 → 공장장 (1970–1976)
- 1976–1980우크라이나 공산당 도네츠크 주당 위원회 서기
- 1980–1987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
- 1986체르노빌 사고 국가위원회 부위원장
- 1987–1990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 제2서기
- 1990–1991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
- 1998–2006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 (제3·4대), 경제정책위원회 위원장
소련 정치국
- 정위원 1990.07–1991.08
1991.11 당 활동 금지까지 재임
관련 역사 사건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경제적 자율성 논의
1990년 6월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에 오른 구렌코는 소련 말기 당의 개편과 공화국의 경제적 자율성 논의가 진행되는 시기를 이끌었다. 레오니드 크라프추크의 회고에 따르면, 구렌코와 크라프추크는 당의 새 강령과 규약을 마련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며, 구렌코는 별도의 우크라이나 공산당 강령과 규약 제안에 놀라움을 보였다. 당은 강령 대신 ‘강령 원칙’을 채택했고, 공화국의 경제적 자립에 관한 결의도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이 회고는 당 내부에서 자율성의 범위가 논의됐음을 보여주지만, 구렌코의 반응이나 그가 이 결정을 주도했는지를 독립적으로 입증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