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라프 구스타보비치 스트루밀린

Станислав Густавович Струмилин
소련 러시아 1877–1974

숫자로 사회주의를 설계한 경제학자

"높은 템포를 위해 서 있는 것이 낮은 템포를 위해 앉아 있는 것보다 낫다" — 1920년대 계획방법론 논쟁에서 유전론자들을 향한 스트루밀린의 일갈.

소련 계획경제의 지적 토대를 세운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 세계 최초의 물질수지 체계를 개발하고, 노동생산성의 '스트루밀린 지수'를 정식화했으며, 초등 의무교육의 경제적 수익률을 최초로 계측했다. 1897년 혁명운동에 투신해 멘셰비키로 세 차례 체포·유배되었고, 1923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해 고스플란 부의장을 지냈다. 1931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레닌상·스탈린상 수상, 사회주의노동영웅(1967).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목적론적 계획론과 1920년대 고스플란 논쟁

1920년대 소련에서 국가계획의 방법론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스트루밀린은 이 논쟁에서 '목적론적(teleological)' 계획론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목적론파는 계획이 기존의 경제적 추세를 단순히 연장하는 '유전적(genetic)' 방식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목표에서 출발하여 경제 구조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획가는 시장의 수동적 반영자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경제의 부문별 비율과 성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대편에는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 블라디미르 그로만, 블라디미르 바자로프 등 '유전론자'들이 서서, 계획이 시장의 객관적 경향과 균형 조건에서 출발해야 하며 자의적 목표 설정은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맞섰다. 스트루밀린의 1926년 논문 「계획 이론에 대하여」는 목적론적 계획론의 핵심 선언이었다. 이 이론적 입장은 이후 그가 고스플란에서 주도한 세계 최초의 물질수지 체계 개발의 방법론적 기초가 되었으며, 스탈린이 1930년대에 목적론적 접근을 공식 채택함으로써 소련 계획경제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