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스타셰프스키

Stefan Staszewski
사회주의권 개혁 지도자 폴란드 폴란드 1906–1989 ○ 자연사

흐루쇼프 비밀연설을 수만 부 찍어내 당의 통제 밖으로 퍼뜨린 바르샤바 당위원회 개혁파 제1서기

1956년 3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휴식 시간, 흐루쇼프에게 스탈린의 반유대주의를 따져 묻자 흐루쇼프는 손을 떨며 스탈린이 소련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바르샤바 유대인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14세에 공산청년운동에 가담했고, 국제레닌학교에서 수학한 후 폴란드 지하당 활동과 소련 체류를 오갔다. 1938년 NKVD에 체포되어 콜리마 수용소에서 8년을 보낸 뒤 1945년 폴란드로 돌아와 선전·언론·농업 부문에서 스탈린주의 노선을 집행했다. 1955년 바르샤바 당위원회 제1서기가 된 후 제20차 당대회를 계기로 개혁파로 전환, 당원들이 비밀연설을 학습하도록 제안하고 1만 5천여 부의 비공식 인쇄본을 찍어내 연설문이 폐쇄된 당 문서에서 세계적 문서가 되는 결정적 통로를 열었다. 폴란드 10월 후 고무우카와 충돌해 1957년 해임되고 1968년 반유대 캠페인으로 축출되었으며, 이후 반체제 운동을 지지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6년 비밀연설의 공개와 유통

1956년 3월,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판한 비밀연설은 폴란드 통일노동자당(PZPR) 지도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에드바르트 오하프가 당 지도자가 된 뒤 바르샤바 당위원회 제1서기 스테판 스타셰프스키는 당원들이 연설을 읽고 폴란드에 미친 함의를 토론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3월 21일 당 서기국은 러시아어 원문과 폴란드어 번역문을 당 조직에 배포하는 방안을 승인했고, 3월 27일에는 더 넓은 배포와 공개 집회를 허가했다.

이 결정은 지도부가 연설을 통제된 당내 교육 자료로만 다루려 했던 한편, 연설 내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서방 라디오 방송을 통한 정보 확산에 대응하려 한 조치였다. 하버드 데이비스 센터의 마크 크레이머에 따르면, 바르샤바에서는 공식 인쇄본 약 3천 부 외에도 스타셰프스키의 주도로 비공식 인쇄본 1만 5천~2만 부가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당 밖에도 배포되었다. 그의 제안과 인쇄 작업은 연설의 유통을 당 지도부가 계획한 범위 너머로 넓히는 데 기여했지만, 그 확산은 폴란드의 당내 토론과 서방 방송 등 여러 경로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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