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티야나 이바노브나 자슬랍스카야

Татьяна Ивановна Заславская
소련 러시아 1927–2013 ○ 자연사

소비에트 경제사회학의 창시자,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뇌관

「소비에트 경제학자로서 국가로부터 높은 봉급을 받는 11명의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경제와 사회의 상태에 대해 인민 앞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생각한다」 — 1983년

물리학도에서 경제학으로 전향한 키이우 출신 학자.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농촌사회를 연구하며 소비에트 경제사회학을 개척했고, 1983년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진단한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KGB가 압수했으나 서방으로 유출되어 『노보시비르스크 선언』으로 불리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토양이 되었다. 소비에트 사회학 협회 회장, VTsIOM 초대 소장, 인민대의원으로 사하로프·옐친과 활동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노보시비르스크 경제사회학 학파: 새로운 학문의 탄생

자슬랍스카야의 가장 지속적인 학문적 유산은 노보시비르스크 경제사회학 학파(НЭСШ)의 창립이다. 1967년 아벨 아간베갼이 IEiOPP 내에 사회문제 부서를 신설하고 자슬랍스카야를 부서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된 이 학파는, 소비에트 학계에서 경제사회학을 독립된 학문 분과로 제도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학파의 핵심 과제는 시베리아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 연구에서 출발했다. 자슬랍스카야와 로잘리나 리프키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농촌-도시 간 인구 이동, 사회-영토 구조, 노동 관계, 시간 활용, 사회경제적 분화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대규모 설문조사와 통계·수학적 방법을 결합한 학제간 연구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경제와 사회 영역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사회적 메커니즘' 개념을 정립했는데, 이는 단순한 경제 결정론이 아니라 사회관계와 제도가 경제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1983년 노보시비르스크 전연방 학술 세미나에서 자슬랍스카야와 리프키나는 소비에트 학계 최초로 '경제사회학'을 공식 학문 대상으로 제안했다. 같은 해 자슬랍스카야의 유명한 보고서는 바로 이 학문적 프로그램의 선언문이기도 했다. 이후 노보시비르스크대 경제학부에 사회학 전공이 개설되고(1976), 1982년 자슬랍스카야와 리프키나가 국내 최초로 '경제사회학' 강좌를 개설했으며, 1989년에는 사회학과가 정식 출범했다.

이 학파는 올가 베소노바의 라즈다톡 경제 이론, 스베틀라나 키르디나의 제도적 매트릭스 이론 등 후속 세대의 독창적 연구로 이어졌다. 오늘날까지도 IEiOPP 사회문제 부서는 자슬랍스카야가 수립한 방법론적 기준과 문제의식을 계승하며 러시아 사회학의 주요 흐름으로 기능하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 선언: 사회학적 진단과 억압된 보고서

1983년 4월, 자슬랍스카야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개선과 경제사회학의 과제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소비에트 계획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순수한 경제학적 틀이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에서 진단한 획기적 시도였다. 그녀는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에 뒤처져 있으며, 노동자·농민의 경제적 주체성이 억압되고, 관료적 관리 체계가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분석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심층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보고서는 당국에 의해 즉시 배포가 금지되었으나, 아벨 아간베갼 소장의 책임 하에 '공용'(для служебного пользования) 딱지가 붙은 100부가 주요 학술기관에 배포되었다. 이후 KGB가 모든 번호부와 작성 메모를 압수했지만, 이미 표지 없는 복사본이 미국과 서독으로 흘러들어가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되고 서방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소련에 재송신되었다. 서방 언론은 이를 「노보시비르스크 선언」이라 명명했고, 이 문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전조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자슬랍스카야 자신은 훗날 "나는 사회주의 체제에 충성스러웠고, 그것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뿐, 결코 그 붕괴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이 보고서는 소련에서 1990년대 초에야 비로소 공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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