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묜 콘스탄티노비치 티모셴코

Семён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Тимошенко
소련 우크라이나 1895–1970 ○ 자연사

전쟁 직전의 국방인민위원

1940년 1월 7일, 스탈린이 "누가 지휘를 맡겠는가?"라고 묻자 긴 침묵이 흘렀다. 티모셴코가 일어나 말했다. "논의된 모든 것을 주신다면 제가 지휘를 맡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부됸니 기병군에서 성장한 원수로, 겨울전쟁에서 만네르헤임 선을 돌파하며 명성을 얻었다. 1940년 보로실로프를 대신해 국방인민위원이 되어 대숙청으로 망가진 붉은 군대의 기계화·재편성을 추진했으나, 1941년 독일 침공까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개전 직후엔 스타브카 의장을 맡았고, 이후 여러 전선을 지휘하며 로스토프 반격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리코프 참패로 전선 지휘에서 물러났다. 전후에는 소련군 원로로 남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겨울전쟁과 만네르헤임 선 돌파

1939–1940년 소련-핀란드 전쟁(겨울전쟁) 초반, 붉은 군대는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지휘 아래 만네르헤임 선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1940년 1월 7일 스탈린이 주재한 최고군사회의에서 "누가 지휘를 맡겠는가?"라는 질문에 긴 침묵이 흐른 뒤, 티모셴코가 일어나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면 제가 맡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북서전선 사령관으로 임명된 그는 곧바로 전술을 전면 재편했다. 탱크를 전선에서 빼고 중포를 집중 배치했으며, 핀란드군을 본뜬 스키 부대와 저격수를 대폭 증강했다. 2월 초에는 25개 사단을 카렐리야 지협 서부에 집결시키고, 2월 1일 하루 동안 숨마 요새 지역에만 3,000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 이후 최대 규모의 포격이었다. 집중 포격으로 만네르헤임 선에 균열이 생겼고, 2월 중순 본격 돌파가 시작되어 비푸리(비보르크)가 함락되었다. 3월 13일 소련은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티모셴코는 3월 21일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와 함께 원수 계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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