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미로 톨리아티

Palmiro Togliatti
이탈리아 이탈리아 1893–1964 ○ 자연사

「일 미리오레(Il Migliore)」: 40년간 서유럽 최대 공산당을 이끈 전략가

죽음을 앞두고 쓴 '얄타 각서'로 모스크바로부터의 자율, 다중심주의를 제창하다 (1964)

이탈리아공산당 창립자·서기장. 코민테른 인민전선을 주도했고 1944년 살레르노 전환으로 반파시스트 연정 참여를 이끌었다. 임종 직전 얄타 각서로 다중심주의를 제창, 유로코뮤니즘의 선구가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살레르노 전환(1944) — 공산당이 반파시스트 내각에 들어가다

1944년 3월, 이탈리아는 분열되어 있었다. 남부는 연합군 점령 하에, 북부는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살로 공화국) 아래, 그리고 북부 산악 지대에서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파르티잔 저항이 전개되고 있었다.

20년간 소련 망명 생활을 해온 팔미로 톨리아티는 모스크바를 떠나 나폴리에 도착했다. 그가 내놓은 전략적 제안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공산당이 바돌리오 원수의 반파시스트 내각에 참여할 것. 군주제 문제는 전후로 미룰 것. 당면 과제는 파시즘 격퇴.

이것이 '살레르노 전환(Svolta di Salerno)'이었다.

이 결정은 당내 강경파를 격분시켰다. 나치에 협력한 전범들과 같은 내각에 앉으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톨리아티의 계산은 냉철했다: (1) 즉각적인 내전을 피하고 파시즘 타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 (2) 합법적 정치 공간에서 PCI의 대중적 기반을 확장할 것, (3) 전쟁이 끝난 후 좌파가 군주제 복귀라는 기정사실 앞에 배제되지 않도록 할 것.

그의 판단은 들어맞았다. PCI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서유럽 최대 공산당으로 성장했고, 톨리아티 자신은 이탈리아 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헌법의 아버지' 중 한 명이 되었다. 제헌의회에서 공산당이 쟁취한 조항들은 지금도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골격을 이룬다.

살레르노 전환은 1970년대 유로코뮤니즘의 선구로 평가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혁명의 포기"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톨리아티 자신은 생애 마지막 글 '얄타 각서'에서 이렇게 답했다: "각국은 각자의 길로 사회주의에 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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