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라브렌티’, 미호엘스 살해의 감독자
1948년 1월 12일 밤, 미호엘스와 골루보프는 민스크 외곽 차나바의 다차로 유인되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트럭에 깔려 즉사했고, 시신은 인적이 드문 거리에 버려졌다.
베리야의 측근으로 1938년부터 1951년까지 벨로루시 국가보안 책임자로 군림하며, 병합된 서부 벨로루시의 소비에트화와 대규모 추방을 지휘했다. 전쟁 중 파르티잔운동 중앙참모부 부장으로 전선 특별부도 관장했다. 가장 악명 높은 행위는 1948년 1월 자신의 민스크 다차에서 스탈린의 지시로 배우 솔로몬 미호엘스를 살해한 일이다. 1951년 소련 MGB 부장관까지 승진했으나 이듬해 실각했고, 1953년 베리야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 없이 부티르카 감옥에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38–1941벨로루시 내무인민위원
- 1941벨로루시 국가보안인민위원
- 1941–1943벨로루시 NKVD, 서부·중부전선 특별부장
- 1942–1943파르티잔운동 중앙참모부 부장
- 1943–1951벨로루시 국가보안인민위원, 이어 장관
- 1951–1952소련 국가보안 부장관, 제2총국장(방첩)
- 1953–1955체포, 재판 없이 옥중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신부 납치와 베리야의 구원
차나바는 본명 라브렌티 잔즈가바로, 쿠타이시 현 나후나보 마을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0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했고, 그루지야가 멘셰비키 정부 아래 있던 1921년 2월 고향에서 무장봉기를 조직한 뒤 그루지야 체카에 들어갔다. 1922년 8월, 텔라비 현 체카 정치국장으로 근무하던 중 무기를 사용해 한 소녀를 납치했다. 전(全)그루지야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는 그에게 '엄중 격리' 조건의 강제노동수용소 5년형을 선고했다. 잔즈가바는 잠시 구금되었으나 곧 도주했고, 1922년 11월 수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라브렌티 베리야가 개입해 1923년 6월 그루지야 체카 간부회가 판결을 뒤집었고, 1924년 당적도 회복되었다. 이 사건은 차나바의 전형적인 행태를 예고했다. 평생 베리야의 후원 아래 폭력과 면책특권이 반복되었고, 베리야가 모스크바로 올라가 NKVD를 장악한 1938년 12월, 차나바는 곧바로 벨로루시 내무인민위원으로 발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