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볼로다르스키 (모이세이 마르코비치 골드시테인)

В. Маркович Володарский
러시아 러시아 1891–1918 ✕ 암살

10월 혁명기 페트로그라드의 선전 인민위원, 암살로 붉은 테러의 불씨가 되다

「동지들이여, 내가 시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 나는 인류의 시계, 세계 혁명의 시계를 보고 있다」

페트로그라드의 출판·선전 인민위원이자 탁월한 군중 연설가. 볼셰비키 검열 체계를 구축하고 『크라스나야 가제타』를 창간했다. 1918년 6월 SR 전투원의 총에 암살되어 우리츠키 피살·레닌 피격과 함께 붉은 테러 전면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언론 검열과 1918년 5월 재판

볼로다르스키는 1917년 11월 페트로그라드 출판·선전·선동 인민위원으로 임명된 직후 볼셰비키 검열 체계를 구축하는 데 착수했다. 그는 반대파 신문들을 체계적으로 폐쇄해 나갔고, 1918년에는 북부 코뮌 연합의 출판 담당 위원으로서 페트로그라드 전역의 언론을 통제했다. 1918년 5월, 볼로다르스키는 여러 반볼셰비키 석간 신문들을 상대로 한 공개 재판에서 주임 검사 역할을 맡았다. 이 재판은 널리 보도되었고, 피고 신문들은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적대 선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 이후 검열은 더욱 강화되어 독립 언론은 사실상 소멸했다.

그의 무자비한 검열관으로서의 면모는 당대 동료들도 인정한 바 있다. 교육인민위원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는 볼로다르스키를 두고 "그는 무자비했다. 그는 10월 혁명의 위협으로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 이후 도래할 붉은 테러의 폭발에 대한 예감으로도 충만해 있었다. 볼로다르스키가 테러리스트였다는 사실을 감출 필요는 없다"라고 기록했다. 루나차르스키에 따르면 볼로다르스키는 "반혁명의 히드라에게 일격을 가하는 데 주저한다면 그것이 우리를, 그리고 10월이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희망까지도 집어삼킬 것"이라고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볼셰비키 내부의 모든 노선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1917년 10월 봉기 직전에는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와 함께 무장봉기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또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도 반대했으나 당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 공개 발언을 삼갔다. 그의 검열관으로서의 무자비함은 신념의 산물이었으며, 볼셰비키 언론 독점 체제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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