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틴 알렉산드로비치 쿱초프

Валенти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упц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1937–

러시아 공화당을 재건한 마지막 세대 서기

1991년 10월 25일, 당 활동 정지 일주일 후 쿱초프는 크렘린에서 옐친을 만나 러시아 공산당 금지령을 철회해 달라고 설득했다. 옐친은 듣지 않았고, 쿱초프는 이후 1년 반 동안 '지하 제1서기'로서 당을 복원대회까지 이끌었다.

볼로그다주 집단농장과 제철소를 거쳐 올라온 금속공학자 출신 당 간부로, 1985년부터 5년간 볼로그다주당 제1서기를 지냈다. 1990년 CPSU 중앙위 서기로 발탁되어 사회정치조직 담당 부서를 이끌었고, 러시아 공화국 공산당(КП РСФСР) 창립 작업에 참여했다. 1991년 8월 이반 폴로스코프의 후임으로 КП РСФСР 제1서기에 선출되었으나, GKChP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사건 직후 '쿠데타 공모'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옐친의 당 활동 금지령 이후에도 지하에서 조직을 유지하며 1993년 КПРФ 복원대회를 주도했고, 이후 11년간 쥬가노프의 제1부의장으로서 신생 러시아 공산당의 제도화를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금지 이후 러시아 공산당의 복원

1991년 8월 쿠데타 이후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 공산당의 활동을 정지시킨 뒤 11월 당과 조직기구를 해산했다. 쿱초프는 당의 제1서기로서 1993년 2월 복원대회까지 사실상 직무를 계속했다. 그는 1992~1993년 러시아 공산주의자 대회 소집 조직위원회를 이끌었으며, 1992년 5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제1서기 직위에 복귀했다. 재판소는 당의 합헌성 소송에서 그를 피고로 세우기 위해 복직을 인정했다. 같은 해 11월 재판소는 기초 당조직의 활동 금지를 해제했지만 중앙 지도기구의 해산은 유지했다.

1993년 2월 복원대회에서는 쿱초프를 중심으로 공동의장제를 도입하려는 구상이 있었지만, 알렉산드르 마카쇼프의 비판 뒤 그는 당내 최고위직을 겐나디 쥬가노프에게 양보했다. 쿱초프는 부의장에 선출된 뒤 1993년 3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러시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부의장을 맡았고, 2008년까지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이었다. 이 과정은 그가 당의 조직적 복원에 핵심 역할을 했으나 지도력은 쥬가노프가 장악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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