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과 원자력 행정을 맡은 베리야의 생산 관리자
«스탈린 동지, 당신은 적들에게 갇히셨지만, 나는 우리 편에게 갇혔습니다.»
바쿠 유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유대인 기술자 출신으로, 툴라 병기공장 책임자를 거쳐 1939년 무기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쟁 직전 체포·고문당했으나 독일 침공 후 스탈린이 소환해 탄약인민위원으로 임명했고, 종전까지 포탄 생산을 4배로 끌어올렸다. 전후에는 쿠르차토프와 함께 제1총국을 이끌며 소련 원자폭탄 계획의 행정·공업 기반을 총괄했고, 수소폭탄 개발까지 관장했다. 세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경력 연표
- 1930s방위산업과 병기 생산 행정에서 성장
- 1941체포 직후 전쟁 발발로 석방되어 탄약 생산에 복귀
- 1941–1945탄약인민위원, 포탄·탄약 대량생산 체계 지휘
- 1945–1953제1총국에서 원자폭탄 계획 행정 담당
- 1953 이후베리야 몰락 뒤에도 원자력 생산 행정 경험으로 생존
관련 역사 사건
1941년 체포와 석방
1941년 6월 7일, 무기인민위원 반니코프는 돌연 체포되었다. 스탈린은 처음에 말렌코프와 베리야를 보내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용서하고 직위에 남겨두겠다'고 제안했으나, 반니코프는 정부 지시로 외국 대표들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고 스탈린은 이를 믿지 않았다. 이후 7월 17일까지 이어진 심문에서 그는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고문 끝에 직속 상관 미하일 카가노비치를 모함했다. 카가노비치는 크렘린에서 대질 심문을 받던 중 잠시 화장실에 가 권총 자살했다.
전쟁 발발 후 한 달이 지나자 전선에는 탄약 부족이 극심해졌다. 스탈린은 베리야에게 반니코프의 행방을 물었고, 그는 루뱐카 내부 감옥에서 급히 소환되었다. 긴 면담에서 스탈린은 반니코프에게 탄약인민위원직을 제안하며 '일어난 일에 대해 원한을 품지 말라'고 당부했고, 자신도 감옥에 갇혔던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니코프는 '동지 스탈린, 당신은 적들에게 갇히셨지만 나는 우리 편에게 갇혔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1941년 8월 14일 공식 석방된 그는 곧바로 무기부인민위원으로 복귀했고, 1942년 2월에는 탄약인민위원에 임명되어 종전까지 소련군 탄약 생산을 총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