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집권한 그루지야의 보스, 그림자 경제의 대부
1965년 6월, 므자바나제는 스탈린의 고향 고리에 있는 박물관을 다시 열게 하면서 스탈린의 이 말을 인용했다: "우리 당은 검증된 사람에게만 문이 열리는 요새다."
흐루쇼프가 키예프 군관구에서 알아본 군사정치위원 출신으로, 1953년 베리야 체포 직후 그루지야 당 제1서기로 발탁되어 베리야의 후견망을 일소하고 19년간 공화국을 통치했다. 1957년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고, 농업-공업 분리 개혁에는 은밀히 저항했으며, 1964년 흐루쇼프 축출 음모를 사전에 통보받은 소수 고위 간부 중 한 명이었다. 스탈린 격하에 제동을 걸어 1965년 고리 박물관을 재개관시켰고, 그의 장기 집권 아래 그루지야는 부패와 지하경제가 번성하는 '그루지야 모델'로 자리잡았다. 1972년 자신이 임명했던 내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수집한 비리 자료로 실각했고, 이후 모스크바에서 연금 생활을 하다 1988년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15–24공장 노동자
- 1924–37붉은 군대 복무, 1927년 입당
- 1937–41군사정치위원, 소련-핀란드 전쟁 참전
- 1941–45대조국전쟁: 레닌그라드 전선·여러 야전군 군사평의회 위원
- 1945–53키예프·프리카르파티예 군관구 군사평의회 위원
- 1953–72그루지야 당 중앙위 제1서기
- 1957–72CPSU 정치국(상임위) 후보위원
- 1972.9부패 혐의로 해임, 연금 생활
관련 역사 사건
- 1939.11–1940.03겨울전쟁군사정치위원
- 1941–1945대조국전쟁레닌그라드 전선·여러 야전군 군사평의회 위원
- 1953베리야의 몰락베리야 체포 직후 그루지야 당 제1서기로 임명되어 베리야의 후견망을 일소1953년 6월 베리야 체포 직후 흐루쇼프에 의해 그루지야 당 제1서기로 발탁되어 베리야의 측근 알렉산드레 미르츠훌라바를 교체하고, 그루지야 당·국가기구 내 베리야의 후견망을 광범위하게 숙청했다.
- 1956.02제20차 당대회와 비밀연설그루지야 당 제1서기, 트빌리시 시위 진압의 현장 지휘1956년 3월 트빌리시에서 비밀연설에 반발한 시위대와 협상하고 일부 양보했으나, 군대 투입으로 진압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