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기 훈장 제1호」: 내전의 영웅이자 첫 원수 5인 중 하나, 레포르토보에서 스러지다
산재한 적위대를 규합해 54일간 우랄 산맥 1,500㎞를 싸우며 돌파했다. 이 불멸의 행군으로 블류헤르 동지에게 적기 훈장 제1호를 수여한다. —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1918.9.28
야로슬라블 빈농 출신으로, 1918년 우랄에서 1,500㎞ 대장정을 지휘해 붉은 군대 최초의 적기 훈장을 받았다. 프룬제 휘하에서 페레콥 방어선을 돌파해 브란겔을 크림에서 축출했고, 극동공화국 총사령관으로 볼로차옙카에서 백군을 최종 격파했다. 쑨원의 주력 군사고문 '갈린 장군'으로 국민혁명군 북벌을 설계했으며, 1929년 중동철도 분쟁에서 만주군을 격파했다. 1935년 초대 원수 5인에 올라 특별극동군을 지휘하며 일본의 팽창에 맞섰으나, 하산 호 전투 뒤 체포되어 루뱐카에서 사망했다. 1956년 복권.
경력 연표
- 1914–1915제1차 세계대전 참전, 두 차례 게오르기 훈장, 중상으로 제대
- 1916볼셰비키당 입당
- 1918우랄 1,500㎞ 대장정 — 적기 훈장 제1호
- 1919–1920제51소총사단장: 시베리아 전역, 페레콥 돌파로 크림 점령
- 1921–1922극동공화국 군사장관 겸 인민혁명군 총사령관, 볼로차옙카 승리
- 1924–1927쑨원의 주력 군사고문 「갈린 장군」 — 국민혁명군 북벌 입안
- 1929중동철도 분쟁: 만주군 격파, 적성 훈장 제1호 수훈
- 1929–1938특별극동군 사령관 — 소비에트 극동 방위 총괄
- 1935초대 원수 5인 중 하나
- 1937투하쳅스키 사건 특별재판부 참여
- 1938하산 호 전투 후 해임, 체포, 루뱐카에서 사망
- 1956사후 복권
관련 역사 사건
중국 북벌의 설계자 — 「갈린 장군」 (1924–1927)
1924년 가을, 블류헤르는 소비에트 군함 보롭스키 호를 타고 광저우에 도착했다. 「Z.V. 갈린 장군」이라는 가명으로 쑨원(孫文)의 주력 군사고문이 된 그는, 함상에서 쑨원과 수 시간에 걸친 회담을 갖고 혁명군 현대화의 청사진을 그렸다. 그의 주도로 소련은 국민혁명군에 소총 4만 정, 탄약 4,200만 발, 포 48문, 산포 12문, 수류탄 1만여 발, 기관총 230정, 항공기 3대 등을 신속히 지원했고, 블류헤르는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산하에 군사위원회를 창설하여 작전 지휘 체계를 정비했다.
1925년 2월, 블류헤르는 반혁명 군벌 천중밍(陳炯明)에 대한 동정(東征) 작전을 입안했다. 국민혁명군의 첫 대규모 공세였던 이 작전은 3월 말까지 7,000명 이상의 적군을 포로로 잡으며 완승을 거두었다. 이어 1926년 6월, 블류헤르는 장제스(蔣介石) 등 국민당 장성들에게 수정된 북벌 계획을 제시했다: 제1단계로 우페이푸(吳佩孚)의 직계(直系) 군벌에 집중 타격을 가해 우한(武漢)을 점령하고, 제2단계로 쑨촨팡(孫傳芳)의 동남 세력을 격파하여 난징과 상하이로 진격한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국민혁명군은 약 10만 명으로, 27만 명에 달하는 적군과 맞서야 했다.
북벌은 그의 계획대로 전개되었다. 1926년 8월 말 국민혁명군은 우한 삼진(한양·한커우·우창)을 잇달아 함락시켰고, 10월 말 시작된 장시(江西) 전역에서는 난창을 점령하며 쑨촨팡 군을 궤멸시켰다. 1927년 3월, 국민혁명군은 마침내 난징과 상하이에 입성했다. 이로써 중국 본토의 군벌 세력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고, 국민당의 전국적 통치로 가는 길이 열렸다. 군벌 규모의 3분의 1에 불과한 병력으로 2년 만에 중국 동부 전역을 석권한 이 작전의 청사진을 설계한 인물이 바로 갈린 장군, 바실리 블류헤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