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프의 부관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굴라그를 관리한 내무인민위원부 차관
베리야가 예조프를 대체하며 예조프 측근들을 차례로 체포할 때, 체르니셰프만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굴라그 국장을 겸임하라는 임무를 받고 2년간 수용소 체제 전체를 지휘했다.
1937년부터 1952년 사망까지 15년간 내무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을 지낸 국가보안 간부로, 예조프 휘하의 부인민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숙청을 피한 인물이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굴라그 국장을 겸임하며 수용소 체제를 총괄했고, 전시에는 발트 3국 강제이주 작전의 실무를 지휘했다. 전후에는 원자력 프로젝트 건설을 감독하며 굴라그 노동력을 핵시설 공사에 동원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경력 연표
- 1915–1917러시아 제국군 소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 1917–1920랴잔 시소비에트 부의장, 특수목적부대 조직
- 1920–1927체카·OGPU 부대 지휘관, 투르키스탄 전선
- 1927–1937극동 OGPU·NKVD 국경군 사령관
- 1937–1939NKVD 부인민위원 겸 노동자농민민병대 총국장
- 1939–1941NKVD 부인민위원 겸 굴라그 국장
- 1941–1952NKVD·MVD 부인민위원/부장관, 원자력 건설 감독
관련 역사 사건
1941년 발트 3국 강제이주 작전
1941년 5월 16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인민위원회는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에서 '반소비에트 분자'를 체포·추방하라는 비밀 결의를 채택했다. NKVD 측 실무 책임자는 부인민위원 체르니셰프였으며, 굴라그 국장을 겸하고 있었기에 수송 열차 편성과 수용소 배정을 직접 관장할 수 있었다.
1941년 6월 13일, 작전 개시 전날 체르니셰프는 NKGB 부인민위원 이반 세로프에게 '에셸론 배차 통보'를 보냈다(중앙FSB문서고, ф. 3-ос, оп. 8, д. 44, л. 63–65). 이 문서에서 그는 리투아니아 12편성, 라트비아 7편성, 에스토니아 6편성 등 총 25편의 특별열차가 각 공화국 지정 역에 도착하는 시각을 상세히 명시했다. 편성당 약 1,500명이 탑승했고, 약 6만 명을 동시에 수송하도록 설계된 계획이었다. 6월 14일 새벽 작전이 일제히 개시되었고, 체르니셰프는 식량 공급과 호송 인력 배치를 총괄하는 '추방자 식량 공급 지침'에도 서명했다.
일주일 만에 리투아니아 약 3만 4천 명, 라트비아 약 1만 5천500명, 에스토니아 약 1만 명이 체포·추방되었다. 이는 독소전쟁 발발(6월 22일)을 불과 8일 앞둔 시점이었다. 전쟁 발발 후 체르니셰프는 발트 3국에서 추가로 이동하는 수감자·추방자들의 수송을 계속 감독했고, 전쟁 기간 내내 이들 강제이주자 수용 체계의 최고 관리자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