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노스트기 문화자유화를 집행한 선전 관료 출신 문화장관
1989년 6월, 소련 최고회의는 니콜라이 리시코프 총리가 제출한 각료 명단을 심사하며 자하로프의 문화장관 재임명을 거부했다. 수십 년간 거수기였던 의회가 현직 장관을 자격 미달이라며 퇴장시킨 첫 사건이었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레닌그라드 당 조직의 선전·선동 부서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중앙으로 진출했고,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문화장관으로 발탁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금지 도서의 출판, 영화 검열 완화, 예술 창작의 자율성 확대 등 소련 문화정책의 결정적 전환을 주도했으며, 모스크바 예술극장 분할 같은 첨예한 갈등을 직접 중재했다. 1989년 새로 구성된 최고회의가 그의 재임명을 거부하면서 소련 의회가 각료 인준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첫 사례의 주인공이 되었다. 퇴임 후 러시아 공화국 부총리를 지냈고, 회고록에서 고르바초프 시대를 '놓쳐버린 기회들의 통치'라고 평가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73–1983 이념·선전 · 소련 · 문화 · 문학예술 통제
경력 연표
- 1957–1973레닌그라드 대학 졸업 후 톰스크·레닌그라드에서 정치경제학 강의, 1973년 경제학 박사
- 1973–1983레닌그라드 주당위 선전선동부장 → 서기, 문화·과학·교육 담당
- 1983–1986중앙위 선전부 제1부부장 → 모스크바 시당위 제2서기 (옐친과 공조)
- 1986–1989소련 문화장관, 글라스노스트기 금서 해제·검열 완화·극장 자율화 추진
- 1989–1990러시아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
관련 역사 사건
연극 실험과 문화정책의 전환
1986년 7월 8일 각료회의 결의로 채택된 극장 관리 개선 및 효율 제고 종합 실험은 극장들이 구체적인 성과에 따른 수입을 재원으로 삼고 그 수입을 자체적으로 운용해 비용을 충당하도록 하는 방식이었으며, 1987~1988년에 시행되었다. 예산 보조금도 수입의 한 종류로 간주되었다. 정책의 공식 목적에는 창작 집단의 주도성과 책임을 높이고 관객을 넓히는 한편, 연극의 이념적·사회적 효과를 강화한다는 목표가 함께 있었다. 따라서 이 조치는 창작 자율성을 넓히려는 흐름과 국가가 예술에 기대한 사회적·이념적 기능이 공존했던 페레스트로이카기의 문화정책을 보여준다.
역사학자 콘스탄틴 유딘은 자하로프의 회고록을 토대로 새 관리 원칙을 실제로 도입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으며, 예술계 일부가 페레스트로이카의 기회를 과거의 검열과 국가의 이념 통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그는 확대된 자율성이 예술위원회의 집단 책임 원칙을 잘못 적용할 경우 창작 과정을 가로막고 수석 연출가의 역할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자하로프의 우려도 전한다. 유딘의 논문은 이 연극 실험의 맥락에서 모스크바 예술극장 분할 사안도 다룬다. 회고록은 장관으로서 자하로프가 행정 실험과 문화계의 요구, 기존 통제 기구의 관성이 맞물린 전환기를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당사자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