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기의 현장 집행자
흑색 1월 뒤 그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조직위원회를 직접 이끌며 모스크바의 현장 대리인이 되었다.
빅토르 폴랴니치코는 소련 공산당의 조직가이자 국제 공산주의권의 정치 고문으로, 아프가니스탄과 남캅카스에서 모스크바의 정책을 현지 권력으로 옮긴 인물이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2서기로서 그는 흑색 1월 이후 바쿠의 통치력을 회복하려 했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조직위원회를 이끌며 군대와 당 기구를 결합한 강경한 질서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분쟁을 억누른 중재자이자 강압을 동원한 중앙의 대리인으로 상반되게 기억된다. 소련 붕괴 뒤 러시아 부총리급 임시행정 책임자가 되었으나 1993년 북오세티야에서 피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9–1991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59–1964오르스크 시 콤소몰 제1서기
- 1965–1971첼랴빈스크 주 콤소몰 제1서기
- 1972–1978오렌부르크 주 공산당 서기
- 1978–1985소련 공산당 중앙위 선전 부문 책임자
- 1985–1988아프가니스탄 주재 소련 공산당 정치고문
- 1988–1991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 제2서기
- 1990–1991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조직위원회 위원장
- 1993러시아 임시행정 수반, 부총리급
관련 역사 사건
아제르바이잔의 강경 통치와 ‘고리 작전’
1988년 폴랴니치코는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서기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은 통상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러시아인 간부가 맡았으며, 당내에서 제1서기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필립 렘러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아제르바이잔 관료기구에 심어 놓은 지지자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으며, 강경하고 타협하지 않는 인물로 평가되었다. 1989년 말 모스크바는 아르카디 볼스키의 특별행정위원회를 폐지하고 폴랴니치코가 이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조직위원회로 대체했다. 렘러는 이 기구의 임무가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을 이용해 아제르바이잔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압박하고 아르메니아 독립운동을 억누르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한다. 1990년 1월 바쿠에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살해와 폭력이 일주일간 이어졌고, 1월 20일 소련군 진입으로 아제르바이잔인 130명이 사망했다. 렘러는 폴랴니치코와 아야즈 무탈리보프가 무력으로 분쟁을 해결하려 한 시도가 1991년 5월 ‘고리 작전’으로 정점에 달했다고 서술한다. 아제르바이잔 내무부 특수부대와 소련군은 샤우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마을 주민들을 추방했으며, 샤우먄은 이후 아제르바이잔 통제 아래 남았다. 작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인권감시단의 1994년 조사에 따르면 소련군을 동반한 아제르바이잔 OMON의 여권·무기 단속 작전은 아르메니아인 남성 수백 명의 체포·구금, 주민 수천 명의 일시 추방, 아르메니아인 마을 22~24곳의 소개를 초래했다. 당국은 불법 이주와 무장조직을 단속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인권감시단은 작전 중 심각한 폭력과 인권 침해가 체계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인권감시단이 인용한 아르메니아 측 주장은 작전의 목표가 마을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을 내쫓는 것이었다고 보았으며, 그 의도는 별도로 다뤄야 할 논쟁적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