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알렉세예비치 코로티치

Виталий Алексеевич Коротич
소련 우크라이나 1936–2025 ○ 자연사

『오고뇨크』를 글라스노스트의 충격파로 바꾸어, 70년간 억압된 진실을 쏟아부은 편집자

「70년 동안 우리는 아버지를 배신한 아들이, 교회를 불태운 자가 영웅이라고 배워왔다. 사람들은 철저한 거짓말 속에서 살아왔다」

키이우 출신 시인이자 의사로, 1985년 반미 소설로 국가상을 받을 만큼 체제 순응적 작가였으나, 1986년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의 추천으로 『오고뇨크』 편집장에 임명되자 잡지를 글라스노스트의 선봉으로 돌변시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실상, 스탈린 시대 대숙청, 노멘클라투라의 특권을 최초로 폭로하며 구독 부수를 26만에서 460만으로 끌어올렸고, 파스테르나크와 나보코프의 작품을 최초로 게재했다. 1989년 인민대표로 당선되어 지역간그룹에 가담했고, 1991년 쿠데타 당시 미국 체류 중 귀국을 거부해 편집장직에서 해임된 후 보스턴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말년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 지지해 고국에서 배척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오고뇨크』의 편집과 공개적 개입

1986년 5월 『오고뇨크』 편집장이 된 코로티치는 정치적으로 신뢰받던 우크라이나의 작가·문학 편집자에서 개혁의 현장을 이끄는 언론인으로 변모했다. 그는 부서장들만으로 구성된 편집부를 예브게니 옙투셴코, 서커스 광대, 저명한 안과의사 등 독립적인 인사들로 바꾸었고, 새 편집진과 함께 당 간부와 국가보안위원회, 군대처럼 종전에는 비판하기 어려웠던 권력기관을 다루었다. 잡지는 아나톨리 리바코프의 스탈린 테러 소설 『아르바트의 아이들』 발췌,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 경찰 고문 사건을 실었으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블라디미르 나보코프·니콜라이 구밀료프의 작품도 게재했다. 1921년 처형된 구밀료프의 시를 발표한 것은 금기시된 문학사의 복원과 당대 권력 비판을 한 지면에 결합한 사례였다. 『오고뇨크』의 발행부수는 코로티치 재임 4년 반 동안 26만 부에서 460만 부로 늘었고, 편집부에 오는 독자 편지도 하루 약 20통에서 약 1천 통으로 증가했다.

그의 언론 활동은 개혁 지도부와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졌다. 1989년 10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코로티치 등 편집자들을 불러 글라스노스트를 지나치게 밀어붙인다고 질책했다. 코로티치는 이후 중앙위원회 소환에 불응했고, 당 이념 담당자 바딤 메드베데프와의 면담에서는 『오고뇨크』 독자들이 사회주의를 믿지 않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소비자들이 이미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고 맞섰다. 1990년 의회에서 그는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선출을 지지했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간그룹 다수는 의회의 선출 절차에 반대했다. 1991년 8월 쿠데타 때 뉴욕에 있던 코로티치는 즉시 모스크바로 돌아오지 않았고, 실패한 쿠데타 뒤 편집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보도는 이를 사임으로 전했고, 이후 보도는 편집부원들이 8월 26일 회의에서 그를 해임했다고 설명한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