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톨트 파블로비치 포킨

Вітольд Павлович Фокін

소련 경제관료에서 독립 우크라이나의 첫 총리로

소련 해체 협정에 서명했던 포킨은 2016년 인터뷰에서 '남자로서 부끄럽지만 크림반도가 병합됐을 때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고 고백했다.

비톨트 포킨은 광산 기술자 출신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경제관료로, 계획경제의 운영과 국가 전환을 함께 경험했다. 그는 독립 직전과 직후 우크라이나 정부를 이끌며 경제 위기와 연방 해체의 압력을 조정해야 했다. 1991년 12월 레오니드 크라프추크와 함께 우크라이나 대표로 벨로베시 협정에 서명해 소련 이후 질서의 출범에 참여했다. 말년에는 돈바스 협상에서 논쟁적인 입장을 보여 공적 역할에서 물러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쿠폰 통화와 루블권 이탈 논쟁

1990년 10월 총리가 된 포킨은 시장경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제정책을 러시아연방·벨라루스와 조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뒤 정부는 쿠폰을 준통화이자 배급 체계로 도입했다. 우크라이나 백과사전은 이 조치가 경제 붕괴를 막았다고 평가하는 한편, 포킨이 흐리우냐의 조기 도입과 러시아 루블권 이탈에 반대해 1992년 9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고 기록한다. 이는 통화 전환의 시기와 방식이 그의 정부 운영에서 핵심 쟁점이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경제 상황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1993년 세계은행 연구논문은 자체 키이우 소매가격 조사와 임금 자료를 토대로, 1992년 한 해 식품 가격이 약 15배 오른 반면 명목임금 상승은 10배 미만이었고 실질임금이 크게 하락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1992년 9~10월 우크라이나 통화가 암시장 달러 환율에서 40퍼센트 넘게 가치가 떨어졌다고 썼다. 이 논문은 포킨 개인의 정책 효과를 분리해 분석하지는 않지만,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무렵 정부가 맞닥뜨린 물가·통화 위기의 규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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