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민을 친 제27소총사단장, 투하쳅스키 사건의 피고
빌뉴스 근교 리투아니아 농민 집안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대장까지 올랐고 1917년 2월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1918년 붉은 군대에 들어가 콜차크군과 싸웠고 1919년 말부터 제27옴스크 소총사단장을 맡았다. 1920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이 사단으로 8월 13일 바르샤바 동쪽 라지민을 점령했고, 16일에는 장갑차를 앞세운 마지막 라지민 공격을 직접 지휘했으나 격퇴되었다. 퇴각 때 패잔 부대를 모아 비아위스토크 포위망에서 잔존 병력을 빼냈다. 이후 크론시타트 진압, 중국 군사고문, 일본·독일·영국 주재 무관을 거쳤고, 1936년 체포되어 투하쳅스키 등과 함께 1937년 총살되었다. 1957년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비타우타스 푸트나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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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36
군사·지휘
- 1918–1936
경력 연표
- 1915–1917독일 전선 복무, 제40투르키스탄 소총연대 대대장
- 1918.11–1919.05제26소총사단 군사위원
- 1919.12.17–1922.09.08제27옴스크 소총사단장 — 1920년 라지민 공격
- 1921.03크론시타트 반란 진압 참여
- 1924–1925중국 칼간 군사고문단장
- 1927.08–1931.03일본·핀란드·독일 주재 무관
- 1932.01–1934.07특별극동군 연해주 집단군 사령관
- 1934.07–1936영국 주재 무관, 1935년 군단장(콤코르)
- 1936.08.20체포 — 1937년 6월 12일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