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빅토로비치 아도라츠키

Владимир Викторович Адоратский
소련 러시아 1878–1945 ○ 병사

IMEL 소장, 스탈린을 이론가로 공인한 첫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레닌은 내 순진함 때문에 나를 '아두라츠키'라고 놀렸다.」 — 가족 회고록

카잔 출신 볼셰비키 철학자. 1929년 스탈린을 '레닌주의의 이론가'로 찬양한 첫 인물로, 1931년 IMEL 소장이 되어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을 편찬, 공산권의 정전 독법을 수십 년간 결정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편찬과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정전화

아도라츠키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은 1931년부터 1939년까지 IMEL 소장으로서 주도한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 편찬이다. 그가 편집한 러시아어판 15권과 독일어판 8권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정치적·이론적 선택이 개입된 정전(正典) 구축 작업이었다. 전임자 다비드 랴자노프가 국제적 학술 기준에 따라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을 기획하고 엄밀한 텍스트 비평을 추구했다면, 아도라츠키는 이 원칙을 실질적으로 후퇴시키고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 틀 안에서 텍스트를 편제했다. 선별된 저작, 정치적으로 배치된 서문과 주석, 그리고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 해석과 충돌하는 텍스트의 배제는 이 편집본의 특징이었다.

그의 『마르크스주의 변증법』(1922), 『칼 마르크스의 과학적 공산주의』(1923), 『국가론』(1923) 등 저작들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국가 이론을 소비에트 교조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29년 이즈베스티야에 발표한 「이론가로서의 스탈린」은 한 개인의 충성 서약이자 소비에트 철학 전체의 방향 전환을 알리는 신호였다. 랴자노프가 숙청되고 아도라츠키가 IMEL을 장악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고전 연구는 국제적 학문 공동체의 공동 작업에서 소비에트 국가의 통제된 영역으로 재편되었다. 그의 편집본은 1950년대 중반까지 소련은 물론 중국, 동유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공산권 전체에서 표준 텍스트로 사용되며 한 시대의 마르크스주의 독법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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