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바히레프

Владимир Васильевич Бахир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16–1991 ○ 자연사

냉전기 소련 재래식 탄약 대량생산 체계를 19년간 지휘한 군수 행정가

그는 자신의 전직 공장인 데그탸레프 공장의 젊은 설계사에게 이렇게 설득했다. "대포도, 로켓도 언젠가는 안 만들게 될 날이 온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따뜻함은 필요하고, 원자력은 핵무기만이 아니라 평화로운 에너지이기도 하다."

소련의 군수 산업 지도자로, 1968년부터 1987년까지 기계공업장관을 지내며 재래식 탄약·폭탄·신관·로켓 추진제 생산을 총괄했다. 모스크바 대학 수리역학부 졸업 후 코브로프의 데그탸레프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출발해 항공기관포·대전차유도탄 개발을 주도했고 1960년 공장장에 올랐다.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의 신임으로 1965년 방위공업부 제1차관, 1968년 신설 기계공업부 장관에 발탁되어 19년간 소련군의 포탄·폭탄·기뢰·고체연료를 책임지는 거대 군수 부문을 지휘했으며, 세계 최초의 수중고속로켓 '시크발(Шквал)' 개발에도 기여했다. 군수 생산과 함께 소비재·원자력 평화 이용까지 아우르며 군수 공업의 합리화를 추구했으나,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세대교체로 은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코브로프 공장의 다각화와 군수 부문 재편

데그탸레프 공장의 수석 엔지니어와 책임자로 일한 1954~1965년, 바히레프는 군수 생산을 유지하면서 공장의 생산 기반을 넓혔다. 1957년부터 개발을 지원한 K-58은 1958년 양산에 들어간 125cc급 도로용 오토바이였고, 공장은 더 강력한 175cc급 K-175 생산도 준비했다. 그는 1959년 가스 원심분리기의 구조와 제조 기술을 익히도록 레닌그라드의 본부 설계국에 파견된 공장 전문가단에 합류했고, 공장 안에 관련 생산 부문을 세웠다. 1964년에는 원자력 에너지 설비, 곧 VT-3 가스 원심분리기의 생산을 정착시킨 공로로 레닌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 성과는 공장의 전통적인 무기 생산과 별도로 원자력 설비 및 민수품 생산을 병행한 사례였다.

1968년 기계공업부 장관이 된 뒤 그는 탄약과 로켓 연료를 맡는 부문의 재편을 이끌었다. 부처는 방위산업의 탄약·로켓 추진제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다시 설치됐으며, 바히레프 재임기에 공장과 설계 조직의 기술 재정비, 신규 기업·연구소·설계국 설립이 추진됐다. 부처가 다룬 품목에는 포탄, 다연장로켓 체계, 대잠·대전차·공병용 탄약, 항공폭탄, 신관과 화공품이 포함됐다. 그는 부처 산업체의 소비재 생산도 확대하려 했고, 제시한 목표인 업계 임금 1루블당 소비재 1루블 초과 생산을 달성했다고 모스크바 대학 연대기는 전한다. 고체연료 로켓 개발에 기여해 1976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고, 1978년에는 고속 수중로켓 시크발 개발에 대한 개인적 공로로 국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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