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파블로비치 바르민

Владимир Павлович Бармин
소련 러시아 1909–1993 ○ 자연사

카튜샤에서 부란까지: 모든 소련 로켓의 발사대를 설계한 엔지니어

그는 로켓을 발사대에 '매달린 상태'로 고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코롤료프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실험 결과 바르민의 안이 최적이었다. 훗날 그를 '바이코누르의 아버지'라 불렀다.

모스크바 출신, 바우만 공대에서 냉동·압축기 공학을 전공하고 1935~36년 미국을 방문해 기술을 시찰했다. 콤프레소르 공장 수석설계자로 독소전 발발 직후 카튜샤 다연장로켓 발사대를 개발했다. 1946년부터 GSKB 스페츠마시를 이끌며 R-1에서 R-7, 프로톤, 에네르기야-부란까지 소련의 거의 모든 로켓 발사대와 사일로를 설계했다. 코롤료프의 수석설계자회의 일원으로 달·금성 토양채취 장치도 개발했으며, 실현되지 못한 달 기지 '즈베즈다'를 구상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위대한 6인: 수석설계자회의

1946년,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소련 로켓·우주 계획을 이끌 비공식 조정 기구로 '수석설계자회의'(Совет главных конструкторов)를 구성했다. 이 회의에는 로켓 기술의 여섯 핵심 영역을 책임지는 인물들이 모였으며, 훗날 '위대한 6인'(великолепная шестёрка)으로 불렸다. 코롤료프가 총괄(로켓 기체)을, 발렌틴 글루시코가 엔진을, 니콜라이 필류긴이 유도·제어계를, 미하일 랴잔스키가 무선통신을, 빅토르 쿠즈네초프가 자이로스코프 관성항법을, 그리고 블라디미르 바르민이 지상 발사대와 연료주입·운반 장비를 맡았다.

바르민의 GSKB 스페츠마시는 로켓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의 모든 것(발사대 구조, 연료공급계, 사일로, 운반·설치 장비)을 책임지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수석설계자회의에서 그의 발언은 회의체의 비공식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구속력을 가졌다. R-1부터 R-7, 프로톤, 에네르기야-부란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요 로켓의 지상 인프라가 이 회의에서 조율되었다. 코롤료프 사후(1966년) 회의는 사실상 해체되었으나, 바르민은 말년까지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 불렀고, 우주로 가는 길을 함께 닦았다"고 회고했다. 이 여섯 명의 협력과 긴장이 소련 우주개발의 황금기를 추동한 엔진이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