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도 볼셰비키도 거부한 러시아 문학의 양심
“인간은 행복을 위해 창조되었다, 새가 비상을 위해 창조되었듯이 — 다만 행복이 언제나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 『역설』
우크라이나계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러시아 문학을 자신의 '진정한 조국'으로 삼은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나로드니키 활동으로 여러 차례 시베리아 유배를 겪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마카르의 꿈』『맹인 음악가』로 1880년대 러시아 문단의 정상에 올랐다. 제정 시절부터 무르탄 사건의 우드무르트 농민, 베일리스 사건의 유대인을 변호했고, 혁명 후에는 루나차르스키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볼셰비키의 적색테러와 사형제를 공개 비판했다. 1902년 알렉세이 고리키의 아카데미 제명에 항의해 자신도 명예 아카데미션을 반납했으며, 죽는 날까지 기근 구호와 고아원 설립에 힘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79–1885첫 단편 발표, 나로드니키 활동으로 반복 체포·시베리아 유배
- 1885–1896니주니 노브고로드에서 『마카르의 꿈』『맹인 음악가』 발표, 문학적 명성
- 1896–1904『루스코예 보가츠트보』 편집, 고리키 제명 항의로 명예 아카데미션 사퇴(1902)
- 1904–1917『루스코예 보가츠트보』 편집장, 무르탄·베일리스 사건 변호, 사형제 반대 운동
- 1917–1921볼셰비키 테러 비판 — 루나차르스키 서한, 기근 구호 활동 중 사망
관련 역사 사건
1891~1892년 기근 구호와 농촌 현실의 기록
1891~1892년 니주니노브고로드 현에 기근이 닥치자 코롤렌코는 루코야노프 군의 여러 마을을 직접 다니며 구호 활동을 벌였다. 그는 독자들이 『루스키예 베도모스티』를 통해 기부한 돈으로 빈민을 위한 무료 급식소 60곳을 열고 운영 상황을 살폈다. 당시 그는 기근의 영향을 보도하는 글도 같은 신문에 기고했다. 훗날 그는 지주와 지방 자치기구인 젬스트보, 관리, 현 지사가 재난의 규모를 감추거나 축소하려 했다고 자신의 활동을 회고했다. 기근에 대한 기사들을 모아 『기근의 해』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의 기록은 구호와 농민의 정치적 조직화가 맞닥뜨린 차이도 보여준다. 코롤렌코는 농촌으로 전단을 보낸 혁명가들의 의도와 달리, 굶주린 주민들이 당국의 지시에 따라 전단을 경찰서에 가져가느라 먼 길을 걸어야 했던 일을 서술했다. 그는 이 장면을 통해 기근 속 농민의 곤경과 도시 혁명가들이 농촌에서 접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