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군을 이끌고 모스크바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으나, 무리한 전선과 알코올 의존으로 무너진 백군 장군
1919년 여름, 영국 사절단은 '하리코프 장군'에게 수여하라는 훈장을 들고 의용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하리코프는 도시의 이름일 뿐이었고, 세인트마이클·세인트조지 훈장은 하리코프 주둔 사령관인 마이-마옙스키에게 주어졌다.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친 제정 러시아 중장으로, 1918년 의용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뒤 빠르게 사단장으로 올랐고 1919년 5월 의용군 사령관이 되었다. 모스크바 공세에서 하리코프·쿠르스크·오룔을 연이어 점령하며 백군 중 가장 깊숙이 볼셰비키 수도 방면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늘어진 전선과 돈군과의 협조 실패, 후방의 마흐노 봉기로 공세는 붕괴했고, 악화된 알코올 의존 탓에 1919년 11월 데니킨이 브란겔로 교체했다. 1920년 11월 크림 철수 중 세바스토폴에서 사망했으며, 권총 자살로 추정된다.
경력 연표
- 1885–96제1사관학교·니콜라옙스크 공병학교 졸업, 참모본부 아카데미 수료
- 1904–05러일전쟁 참전, 대령 진급
- 1914–17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1근위군단 지휘, 중장 진급
- 1918의용군 사병 입대, 드로즈돕스키 사후 제3소총사단장 취임
- 1919.5의용군 사령관 임명, 하리코프 점령 후 지역 총사령관 겸임
- 1919.6–10모스크바 공세 주도, 쿠르스크·오룔 점령
- 1919.11공세 붕괴로 해임, 브란겔이 승계
- 1920크림에서 후위부대 지휘, 세바스토폴 철수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