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제노노비치 마이-마옙스키

Владимир Зенонович Май-Маевский

의용군을 이끌고 모스크바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으나, 무리한 전선과 알코올 의존으로 무너진 백군 장군

1919년 여름, 영국 사절단은 '하리코프 장군'에게 수여하라는 훈장을 들고 의용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하리코프는 도시의 이름일 뿐이었고, 세인트마이클·세인트조지 훈장은 하리코프 주둔 사령관인 마이-마옙스키에게 주어졌다.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친 제정 러시아 중장으로, 1918년 의용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뒤 빠르게 사단장으로 올랐고 1919년 5월 의용군 사령관이 되었다. 모스크바 공세에서 하리코프·쿠르스크·오룔을 연이어 점령하며 백군 중 가장 깊숙이 볼셰비키 수도 방면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늘어진 전선과 돈군과의 협조 실패, 후방의 마흐노 봉기로 공세는 붕괴했고, 악화된 알코올 의존 탓에 1919년 11월 데니킨이 브란겔로 교체했다. 1920년 11월 크림 철수 중 세바스토폴에서 사망했으며, 권총 자살로 추정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의용군의 모스크바 공세와 후퇴

1919년 5월 23일, 마이-마옙스키는 하리코프에서 적군을 몰아낸 뒤 의용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데니킨의 7월 3일 모스크바 진격 지령은 그에게 쿠르스크·오룔·툴라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방면을 방어하면서 키예프에 진입하라고 명했다. 그는 철도망을 활용해 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돈바스 전선에서 성과를 냈으며, 하리코프 점령 뒤 키예프·오룔·보로네시 방면으로 진격했다. 9월 20일 쿠테포프 부대가 쿠르스크를 점령했고, 10월 14일 백군은 오룔에 들어갔다. 수도에서 약 36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진격했지만, 점령지 통치와 병력 보충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전선은 지나치게 길어졌다.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마흐노의 혁명봉기군이 후방을 위협해 백군이 병력을 빼내야 했고, 적군은 남부전선에 증원병력을 모았다. 10월 20일 적군의 반격으로 마이-마옙스키는 오룔에서 철수했다. 그는 쿠르스크로 질서 있게 후퇴했으나, 공세의 실패 책임과 알코올 문제를 둘러싼 비판 속에서 데니킨은 11월 27일 그를 해임하고 브란겔로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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