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빅토로비치 사하로프

Владимир Викторович Сахаров

브루실로프 공세의 11군 사령관이자 백군에 합류한 기병대장

1917년 3월,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전보에서 국가두마를 '범죄적 무리'라 맹비난한 뒤 이렇게 끝맺었다: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흐느끼며 말씀드립니다. 가장 고통 없는 탈출구는 이미 제시된 조건들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빅토로비치 사하로프는 제정 러시아의 기병대장으로, 러시아-튀르크 전쟁, 의화단 진압,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50년 군 경력에서 제국 군사 엘리트의 전형적 궤적을 밟았다. 1915년 11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보조 축을 맡아 브로디를 점령하고 수만 명의 포로를 확보했다. 1916년 가을 루마니아 전선의 두너이군 사령관으로 파견되어 페르디난드 1세의 보좌관으로 사실상 전선을 지휘했다. 2월 혁명 직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전보에서 국가두마를 맹비난하면서도 퇴위를 권고한 장면은 군주제 장교단의 분열된 충성을 보여준다. 혁명 후 해임되었고 내전기 크림에서 백군에 가담, 1920년 녹색군에게 체포·처형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브루실로프 공세에서의 11군 지휘

사하로프는 1915년 10월 25일 남서전선 제11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16년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제11군은 주공이 아니라 보조 임무를 맡았다. 사하로프는 타르노폴에서 두브노·브로디 방면으로 진격하도록 계획했고, 제6군단의 초기 공격은 큰 손실을 내고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제17군단은 소파노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제2군 사이 전선을 돌파했다. 이후 제11군은 플랴셰프카강을 건너 베레스테치코를 점령하고 라지빌루프와 포차이우를 차지했다. 7월에는 스티르강을 건너 적을 리파강 너머로 밀어내며 약 1만 4천 명의 포로를 잡았고, 7월 25~29일 브로디 전투에서 도시를 점령해 약 1만 4천 명과 대포 9문을 노획했다. 그러나 제11군의 역할은 계속 보조 작전으로 규정되었고, 8월 공세는 큰 손실 끝에 중단되었다. 9월 재공격도 저지되었다. 이 작전은 제11군의 전진과 포로 획득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르비우 방향의 돌파를 완수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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