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표도로비치 지갈린

Владимир Фёдорович Жигал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인 1907–1990 ○ 자연사

브레즈네프 시대 군수중공업을 18년간 관장한 장관

베리야에게 밤마다 전화로 공장 상황을 보고할 때면, 차관임에도 전화기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소련의 중공업 행정가로, 1965년부터 1983년까지 중공업·에너지·수송기계부 장관을 역임하며 브레즈네프 시대 군수산업과 민간 중공업의 핵심 축을 담당했다. 레닌그라드의 이조르스키 공장 노동자로 출발해 '크라스니 메탈리스트' 공장 책임자까지 오른 현장형 기술관료였으며, 1940년대에는 라브렌티 베리야의 직접 지휘 아래 노보크라마토르스크 중기계공장(NKMZ)의 방산 생산을 현장에서 감독했다. 중앙위원회 위원(1964~1986)과 최고회의 대의원(6~10기)을 지냈고, 1977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의 장기 집권은 소련 군산복합체가 당-국가 체제 안에서 제도화된 안정적 관리 구조를 확립했음을 보여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공장 기술자에서 중앙 산업행정가로

지갈린은 1925년 이조르스키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해 기술자와 조장을 거쳤고, 1929~1930년 적군 복무 뒤 기계설비 설치 기술자로 산업행정에 복귀했다. 1931년 레닌그라드 기계연구소를 마친 뒤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명칭 승강기계 공장에서 1931~1937년 작업장장과 생산책임자를 맡았다. 1937년부터는 별개 기업인 레닌그라드의 '크라스니 메탈리스트' 공장에서 수석기술자였고, 1938~1940년 공장장을 지냈다. 1940년 중공업인민위원부의 계획·배분 부서장으로 옮겨 중앙 행정 업무를 맡았다.

1945~1946년 중공업인민위원 대리, 1946~1949년 중공업부 차관, 1949~1953년 제1차관을 지냈다. 1951~1953년에는 정유공장 건설용 기술설비의 생산과 일괄 공급을 담당하는 주무국도 이끌었다. 1953~1954년 수송·중공업부 평의회 위원, 1954~1957년 중공업부 차관을 거친 뒤, 1957년 모스크바 시 국민경제회의로 옮겼다. 그는 1961~1963년 이 회의 의장을 맡았고, 1963~1965년 소련 국민경제회의 제1부의장 겸 소련 장관으로 일했다. 1965년 장관직에 올라 1983년 4월 은퇴할 때까지 중공업·에너지·수송기계 부문을 관장했다. 그가 이끈 부문에는 약 1,500개 기업이 속했고, 야금설비와 디젤엔진, 기관차와 화차, 광산기계 및 하역·운반기계를 설계·생산했다. 1970년대에는 툴라주 벨료프 제동장치 공장이 트란스마시 생산연합에 편입되어 가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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