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중요사건 수사부장
수감자들은 그를 '돌 손님(카멘니 고스티)'이라 불렀다. 낮고 냉담한 목소리, 굳은 표정으로 심문실에 들어서는 그 앞에서 누구도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베리야의 최측근 수사 책임자로, 스탈린 시대 말기 가장 민감한 정치 사건을 도맡았다. 1939년 NKVD 수사부장, 1943년 NKGB 특별중요사건 수사부장으로 적군 공군 지휘부 사건과 메이예르홀트 심문을 지휘했고, 가혹한 심문으로 악명 높았다. 1946년 실각해 6년간 대외재산총국 서류직으로 전락했으며, 1953년 베리야에 의해 MVD 특별수사부장으로 복귀해 의사들의 음모 사건 반전을 맡았다. 베리야 체포 직후 기소되어 그해 12월 총살됐고, 2000년 사후 복권도 거부됐다.
경력 연표
- 1938–1939NKVD 국가보안총국 수사부 부부장, 이어 부장
- 1940–1941국가보안총국 제3부장, 수사 부부장
- 1941–1943NKVD 수사부장
- 1943–1946NKGB·MGB 특별중요사건 수사부장
- 1946–1947고리키주 MGB 관리국장, 이어 예비역
- 1947–1953대외 소비에트재산총국 부장
- 1953MVD 특별중요사건 수사부장
- 1953체포,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심문 방식과 주요 사건
블로지미르스키의 심문실은 '고기 분쇄기'라 불렸다. 그가 즐겨 사용한 도구는 고무 곤봉이었고, 피의자가 의식을 잃으면 물을 끼얹어 깨운 뒤 심문을 이어갔다. 1941년 적군 공군 지휘부 사건에서 블로지미르스키는 부하 로도스와 함께 알렉산드르 록티오노프 상장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번갈아 고무 곤봉으로 때렸다. 록티오노프는 "나는 아무 죄도 없다"고 고함을 지르다 의식을 잃었고, 그들은 그를 물로 되살려냈다. 파벨 리차고프는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2차례 소비에트연방영웅인 야코프 스무슈케비치도 같은 방식으로 고문당했다. 라브렌티 베리야조차 이 사건을 두고 "진짜 고기 분쇄기"라고 평했다.
그보다 앞선 1937년 말, 블로지미르스키는 훗날 국가보안장관이 되는 빅토르 아바쿰프와 함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당 서기 나탄 마르골린을 심문했다. 두 사람의 구타와 고문을 견디다 못한 마르골린은 감방에서 손수건으로 만든 밧줄로 목을 맸으나 간신히 구조되었고, 결국 1938년 2월 총살됐다. 투르크메니스탄 신문 편집자 이우다 라비노비치는 블로지미르스키 앞에서 자신이 투르크멘 공화국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수장이라고 '자백'했다. 우즈베키스탄 인민위원회 의장 술탄 세기즈바예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1950년대 중반 복권됐다.
죄수들은 블로지미르스키를 '돌 손님(카멘니 고스티)'이라 불렀다. 낮고 울림이 큰 그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르며 다가올 때마다, 누구도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1953년 체포 후 그는 "나는 단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고, 베리야가 상부의 승인을 받았을 것이라 믿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