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게르마노비치 크리비츠키

Вальтер Германович Кривицкий
소련 폴란드 (갈리치아 유대계) 1899–1941 ✕ 의문사, 자살 판정

스탈린의 비밀 정보 활동을 서방에 처음 증언한 망명 정보관

1936년 12월, 슬루츠키가 그에게 임박한 모스크바와 베를린의 협정에 대해 알렸다.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합니다. 아마도 히틀러와의 협정 체결까지 남은 시간은 서너 달뿐일 것...' 크리비츠키의 회고는 나우모프가 1936~1937년의 물밑 정치를 재구성하는 주요 사료다.

갈리치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본명이 자무엘 긴즈베르크인 소련 군사정보 요원으로, 1930년대에 헤이그를 거점으로 서유럽 비합법 정보망을 이끌었다. 1936년 12월 해외정보부장 슬루츠키에게서 모스크바와 베를린의 물밑 접촉을 들었고, 1937년 여름 파리에서 시피겔글라스투하쳅스키 사건의 본질을 논한 끝에, 동료 이그나츠 라이스가 암살되자 그해 가을 망명했다. 1939년 회고록 '나는 스탈린의 요원이었다'를 펴내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으며, 1941년 2월 워싱턴의 호텔에서 총상 사체로 발견되었다. 자살로 판정되었으나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경력 연표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