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비밀 정보 활동을 서방에 처음 증언한 망명 정보관
1936년 12월, 슬루츠키가 그에게 임박한 모스크바와 베를린의 협정에 대해 알렸다.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합니다. 아마도 히틀러와의 협정 체결까지 남은 시간은 서너 달뿐일 것...' 크리비츠키의 회고는 나우모프가 1936~1937년의 물밑 정치를 재구성하는 주요 사료다.
갈리치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본명이 자무엘 긴즈베르크인 소련 군사정보 요원으로, 1930년대에 헤이그를 거점으로 서유럽 비합법 정보망을 이끌었다. 1936년 12월 해외정보부장 슬루츠키에게서 모스크바와 베를린의 물밑 접촉을 들었고, 1937년 여름 파리에서 시피겔글라스와 투하쳅스키 사건의 본질을 논한 끝에, 동료 이그나츠 라이스가 암살되자 그해 가을 망명했다. 1939년 회고록 '나는 스탈린의 요원이었다'를 펴내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으며, 1941년 2월 워싱턴의 호텔에서 총상 사체로 발견되었다. 자살로 판정되었으나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9–1921 보안·정보·치안 · 소련 · 국가보안 기관
경력 연표
- 1919–1921혁명기 붉은군대 정보 활동 시작
- 1921–1935군사정보국(4국) 요원, 유럽 비합법 활동
- 1935–1937헤이그 주재 비합법 레지덴트
- 1937라이스 암살 뒤 파리에서 망명
- 1939회고록 출간, 미 의회 증언
- 1941워싱턴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영국 MI5 심문과 정보 제공
1939년 크리비츠키는 아이작 돈 레빈과 함께 미국에서 소련 정보 활동에 관한 기사를 발표하고 회고록 『나는 스탈린의 요원이었다』를 냈다. 영국 정보기관은 이 공개 증언과 미국에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를 접촉했다. 1940년 1월 런던에서 MI5의 제인 아처가 그를 심문했다. 크리비츠키는 처음에는 영국 내 소련 활동이나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했으나, 뒤이어 외무부 암호부서의 간첩 존 허버트 킹과 킹의 전임자 어니스트 올덤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킹의 전임자가 1933년 사망한 올덤이었다는 설명은 영국 문서에 남았다. 또한 크리비츠키는 헤이그에서 활동한 앙리 피크가 킹을 포섭했다고 설명하고, 피크를 사진으로 알아보았으며, 킹이 확보한 외교 전문을 읽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문들의 내용을 아처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이 정보는 영국 당국이 킹을 조사하고 간첩 혐의로 기소하는 과정에서 참고가 됐다. 2012년 MI5 기록을 검토한 연구는 크리비츠키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관련 인물과 작전의 세부 사항은 일부 감추거나 축소해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무엇을 알고 있었고 왜 선택적으로 공개했는지는 자료 해석의 쟁점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