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훙원

王洪文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 마오주의 중국 중국 1935.12.–1992.8.3. ↓ 체포 1976 · 병사

상하이 노동자 반란파에서 당 부주석까지 오른 「헬리콥터」, 4인방의 최연소

4인방의 최연소자. 상하이 면방직공장 보위 간부에서 1966년 11월 노동자 반란 본부를 세우고 상하이 코뮌을 조직했으며, 38세에 당 제2부주석까지 올랐다가 1976년 10월 6일 쿠데타로 체포되었다.

지린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상하이 면방직공장의 보위 간부였다. 1966년 노동자 반란 조직 「공총사」를 이끌어 1967년 1월 상하이 시정부를 접수한 「1월 폭풍」의 주역이 되었고, 장춘차오·야오원위안과 함께 상하이 혁명위원회를 이끌었다. 마오가 「노동자 출신 후계자」로 발탁해 1973년 제10차 당대회에서 당 부주석이 되었으나 경험 부족으로 「헬리콥터」라 조롱받았다. 1976년 10월 4인방으로 체포되어 1981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1992년 옥중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다른 이름: 왕홍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상하이 노동자 반란 조직과 권력 장악

왕훙원은 1966년 11월 6일 여러 반란파를 결집해 상하이 노동자 반란파 총사령부(공총사)를 이끌었다. 상하이 당·시 정부가 공총사를 불법으로 규정하자, 조직은 11월 8일부터 안팅에서 사흘간 농성을 벌이며 시 당위원회에 요구를 제시했다. 베이징에서 온 첫 복귀 촉구 전보를 거부한 뒤, 장춘차오와 협상해 공총사의 합법성을 인정받고 분쟁을 상하이 현지 회의에서 다루기로 했다.

1967년 1월 공총사 산하 반란파들은 신문사와 방송국을 장악하고 시 당·정부 지도부의 해임과 행정권 종료를 요구했다. 왕이 이끈 조직은 상하이의 권력 공백 속에서 파벌 간 충돌과 분열에도 직면했다. 1월 19일 반란파 지도자들은 파리 코뮌을 본뜬 인민공사를 제안했고, 상하이 인민공사는 2월 5일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마오는 선언문의 직접선거 구상을 비판하고 중앙의 권한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보아 공사 선포를 막았다. 2월 23일 인민공사는 혁명위원회로 바뀌었고, 왕은 부주임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공총사 지도부와 왕의 활동은 노동자 반란이 지역 당권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 한편, 중앙 지도부가 새 기구의 형태와 한계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