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양 삼걸의 한 사람으로 장쉰의 복벽에 가담하고 남북 화의를 위해 총리를 맡은 장군
즈리 정딩 출신으로 톈진 무비학당을 졸업했고, 청일전쟁 평양 방어전에서 손가락을 잃었다. 1895년부터 위안스카이의 소잔 연병에 참여해 베이양 상비군을 키웠고, 펑궈장·돤치루이와 함께 베이양 삼걸로 불렸다. 신해혁명 때 청의 육군대신이 되었고 청이 무너지자 물러났으나, 1914년 베이양 정부에 들어가 육군총장과 참모총장을 지냈다. 1917년 7월 장쉰의 복벽 정부에서 참모부 대신을 맡았다. 그해 11월 돤치루이가 물러나자 펑궈장이 남북 화의를 위해 그를 국무총리로 앉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8년 3월 물러났다. 만년에 베이징의 치안과 자선에 힘쓰며 군벌들 사이를 중재했고, 1930년 베이징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왕사진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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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912
청 왕조 국가기관청 육군대신
군사·지휘 -
1914–1918
북양정부·군벌육군총장·참모총장대표
군사·지휘 -
1917–1918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88톈진 무비학당 졸업
- 1894청일전쟁 평양 방어전 참전
- 1895.12소잔 신건육군 훈련 책임
- 1911.10청 육군대신
- 1915.08육군총장
- 1916.04.23참모총장
- 1917.07.01장쉰 복벽 정부 참모부 대신
- 1917.11.30–1918.03.23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