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에서 위조 문서를 내놓은 프로이센 경찰관, 뒤에 비스마르크의 정보 책임자
1818년 메르제부르크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845년 슐레지엔 「음모」 사건에서 공장주 슐뢰펠을 우두머리로 몰았으나 증거가 모자라 그는 풀려났다. 1847년 사법직을 떠나 형사 변호사로 이름을 떨쳤다. 1850년 11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후원으로 경찰청에 돌아왔고, 1851년 런던 박람회를 기회로 독일 망명자를 염탐했다. 1852년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의 주요 검찰 증인으로 나섰으나 그가 내놓은 「원본 의사록」이 위조로 드러났다. 이후 베를린 형사경찰 국장을 지냈고 1860년 직권 남용 재판 뒤 휴직되었다. 1863년 말부터 비스마르크를 위해 일하며 1866년과 1870년 전쟁에서 대본영 정치경찰을 이끌었다. 1882년 베를린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7–1850베를린 형사 변호사
- 1850베를린 경찰청 복귀
- 1852쾰른 공산주의자 재판 검찰 측 주요 증인
- 1854–1860베를린 형사경찰 국장
- 1866대본영 정치경찰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