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동맹을 이끈 재단사로, 독일 최초의 공산주의 이론가로 꼽힌다
1808년 마그데부르크에서 하녀의 아들로 태어나 재단사가 되었다. 1837년 파리에서 의인동맹에 들어가 1838년 첫 저작 『있는 그대로의 인류와 있어야 할 인류』를 냈고 1839년 파리 시가전에 가담했다. 1842년 스위스에서 낸 『조화와 자유의 보장』을 마르크스는 독일 노동자의 「격렬하고 빛나는 문학적 데뷔」라 불렀다. 취리히에서 체포되어 열 달 갇힌 뒤 추방되었다. 1846년 마르크스와 지도권과 혁명관을 두고 부딪쳐 갈라섰다. 1848년 혁명 때 독일로 돌아와 베를린에서 「원선거인」을 냈으나 역할은 작았고, 1849년 말 미국으로 돌아가 「노동자 공화국」(1850~1855)을 펴냈다. 재봉틀 특허 9건을 얻었고 1871년 뉴욕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빌헬름 크리스티안 바이틀링
주요 활동과 소속
- 1837–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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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1855
독립 활동대표
이념·선전
경력 연표
- 1837파리에서 의인동맹 가입
- 1842『조화와 자유의 보장』 출간
- 1848독일 귀국, 베를린에서 「원선거인」 발행
- 1850–1855뉴욕에서 「노동자 공화국」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