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Wolf-Heinrich von Helldorff

베를린 돌격대 지휘관과 베를린 경찰청장을 지내고 7월 20일 음모에 가담해 처형된 나치 정치인

메르제부르크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자유군단과 카프 폭동을 거쳐 1930년 나치당에 들어갔다. 1931년 베를린 돌격대를 이끌며 쿠르퓌르스텐담 반유대 폭동을 조직했고, 1933년 포츠담, 1935~1944년 베를린 경찰청장으로 유대인 박해에 앞장섰다. 『갈색책』과 소련 반파시즘 서적은 그를 국회의사당 방화 지휘자이자 동성애자로 그렸다. 1938년부터 저항 세력과 접촉했고, 7월 20일 음모가 실패한 뒤 1944년 8월 15일 처형되었다.

다른 이름: 볼프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 헬도르프 백작

주요 활동과 소속

베를린 돌격대에서 7월 20일 음모까지

메르제부르크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에 경기병 장교로 싸웠다. 전후 로스바흐 자유군단 등에 들어갔고 1920년 카프 폭동에 가담했다. 1924~1928년 민족사회주의 자유운동 소속으로 프로이센 주의회 의원을 지냈다. 1930년 8월 나치당에 들어가 1931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돌격대를 이끌었고, 그해 9월 12일 쿠르퓌르스텐담 반유대 폭동을 조직했다. 1933년 3월 제국의회 의원과 포츠담 경찰청장이 되었고, 1935년 7월부터 1944년까지 베를린 경찰청장으로 유대인 차별 지침을 내리고 이주하는 유대인에게서 돈을 뜯었으며, 전쟁 중에는 그의 경찰이 강제 이송에 가담했다. 『갈색책』은 그를 하이네스와 함께 국회의사당 방화대의 지휘자로 지목했고, 소련의 반파시즘 서적은 그를 동성애자이자 판데르루버와 이어진 인물로 그렸다. 1938년부터 베크·비츨레벤 등 저항 세력과 접촉했고 1944년 슈타우펜베르크를 여러 차례 만났다. 7월 20일 음모가 실패한 뒤 인민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8월 15일 플뢰첸제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