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공업을 책임진 2인자,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요 피고로 처형된 기술관료 출신 당 간부
1937년 말, 키로프 공장 당위원회는 카푸스틴을 '전문적 무능'을 이유로 당에서 제명했다. 노동자들이 작업반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해 재심을 요구했고, 결정은 번복되었다.
트베리 현 농민 출신으로 노동자·군 복무를 거쳐 레닌그라드 산업대학을 우등 졸업한 기술관료였다. 1940년 레닌그라드 시당 공업 담당 서기가 되어 포위전 내내 KV 전차·연대포·박격포 생산을 총괄했고, 1945년 제2서기로 승진해 도시 경제 재건을 지휘했다. 1949년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체포되어 영국 스파이 혐의가 조작되었고, 이듬해 10월 1일 보즈네센스키·쿠즈네초프·포프코프 등과 함께 레바쇼보에서 총살되었다. 1954년 사법 복권, 1988년 당적 회복.
경력 연표
- 1923–1928볼호프스트로이 토공·'붉은 푸틸로베츠' 공장 리벳공; 붉은군대 복무, 소대장 보좌관
- 1928–1934보로실로프 제련공장 정비사·직장; 레닌그라드 산업대학 기계공학 우등 졸업
- 1935–1938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비커스 연수; 키로프 공장 터빈공장 부책임자 (당 제명 후 노동자 탄원으로 복권)
- 1938–1940키로프 공장 당위 서기 → 키로프 구당 서기
- 1940–1945레닌그라드 시당 공업 담당 서기; 포위전 중 국방위원회 전권대표·방어위원회 '빅5' 위원
- 1945–1949레닌그라드 시당 제2서기
- 1949–1950'레닌그라드 사건': 체포·재판·처형 (1954년 사법 복권, 1988년 당적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