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보이콧으로 한국전 개입을 허용하고 휴전을 제안한 소련 유엔 외교관
1951년 6월 23일 유엔 라디오 방송에서 말리크는 말했다. "교전국들이 38도선에서 상호 철군하는 휴전과 정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평화를 위해 치르기에 너무 큰 대가는 아닐 것이다."
야코프 말리크는 두 차례 유엔 상임대표(1948~1952, 1967~1976)를 지낸 소련의 대표적 외교관이다. 하리코프 주 농민 가정 출신으로 경제학을 전공하고 당 간부를 거쳐 1937년 외무인민위원부에 입부했다. 1951년 6월 유엔 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전쟁 휴전과 38도선 상호 철군을 제안해 정전 협상의 물꼬를 텄고, 196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안보리에서 정당화했다. 일본·영국 대사와 외무차관을 두루 거친 말리크의 유엔 외교는 스탈린 말기부터 브레즈네프 시대까지 소련의 국제적 입장을 관철하는 핵심 통로였다.
경력 연표
- 1930–1935하리코프에서 경제학자로 일하며 당 간부 활동
- 1937–1939외무인민위원부 근무
- 1942–1945주일 소련대사
- 1946–1953외무차관
- 1948–1952유엔 주재 소련 상임대표
- 1953–1960주영 소련대사
- 1960–1967외무차관
- 1967–1976유엔 주재 소련 상임대표
관련 역사 사건
1950년 안전보장이사회 보이콧
1950년 1월 13일, 말리크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걸어나갔다. 소련이 제안한 국민당 대표 축출과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동의가 부결되자 항의의 표시였다. 말리크는 장제스 정권의 대표가 안보리에 있는 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소련은 이후 7개월간 유엔 안보리를 전면 보이콧했다.
이는 소련 외교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소련은 자국의 불참이 안보리의 모든 결정을 불법화할 것이라고 믿었으나, 국제사법재판소는 상임이사국의 불참을 기권으로 간주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 보이콧 기간 동안인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군이 38도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했다. 이틀 뒤 안보리는 조선의 침공을 규탄하고 유엔 회원국에 군사지원을 요청하는 결의 82호·83호·84호를 연달아 채택했다. 상임이사국 소련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능했다. 말리크의 빈 의자 덕분에 유엔군의 한국전 개입이 법적으로 성립된 것이다.
말리크는 1950년 8월 1일 안보리 의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곧바로 한국전쟁이 '내전'이며 외국 군대는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미 전세는 돌이킬 수 없이 굴러간 뒤였다. 보이콧의 결과를 목도한 소련은 이후 어떤 경우에도 유엔 안보리 회의를 빠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