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카를로비치 밀레르

Евгений Карлович Миллер

북부 백군을 지휘하고 파리에서 NKVD에 납치된 발트 독일계 제정 러시아 장군

나는 그들에게 분노도 복수심도 없으며, 그저 무엇에든 선동될 수 있는 불쌍한 회색 무리일 뿐이다.

발트 독일계 귀족 가문 출신의 제정 러시아 장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단장까지 올랐다. 내전기에는 아르한겔스크 북부정부의 수반 겸 북부 백군 총사령관으로서 영국·미국 간섭군의 지원을 받으며 볼셰비키에 맞섰으나, 연합군 철수 후 홀로 싸우다 1920년 2월 노르웨이로 탈출했다. 망명 후 러시아 전군연합(ROVS) 의장으로 반소 활동을 이끌었으며, 1937년 파리에서 NKVD 요원 니콜라이 스코블린의 함정에 빠져 납치되어 모스크바로 끌려갔다. 1939년 5월 NKVD 내부 교도소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아르한겔스크 사수 결정과 북부정부의 붕괴

1919년 8월 연합군이 아르한겔스크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영국 측은 북부정부 수반 밀레르에게 백군을 무르만스크로 옮기라고 권고했다. 밀레르는 이를 거부하고 아르한겔스크를 지키기로 했다. 그는 아르한겔스크의 백군이 볼셰비키 권력의 중심인 페트로그라드에 더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가할 수 있고, 남부의 데니킨군이 반격하면 볼셰비키를 양면전쟁에 묶어둘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철수는 적에게 사기상의 승리를 안겨준다고 판단했다. 1919년 가을 그의 군대는 5만 4천 명이 넘었고 아르한겔스크 내륙으로 진격해 적군을 밀어냈다. 그러나 이 전과는 볼셰비키가 북부를 우선 전선으로 여기지 않았던 데 따른 것이었다. 1919년 말과 1920년 1월 적군 제6군이 대규모 공격과 포격을 가하자 백군은 패했고, 일부 부대는 달아나거나 해산했고 일부는 적군에 넘어갔다. 악천후와 통신·보급 문제가 적군의 진격을 늦췄지만, 1920년 2월 중순 패배와 포획이 임박했다. 밀레르는 2월 19일 쇄빙선 미닌호를 타고 아르한겔스크를 떠났으며, 북부정부의 주요 인사와 가족, 일부 장교·관리·민간인도 함께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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