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아프간 철수를 외교로 마무리한 군축 협상가
“2년 반 동안 우리는 입장을 좁혀, 당대 가장 현대적인 무기의 완전 폐기 조약에 서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신께 감사하게도 그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 1987년 INF 조약에 대해
소련과 러시아의 외교관으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 아래서 외무부 제1차관(1986–1990)을 지내며 냉전 말기 소련 외교의 실무를 이끌었다. 소련군 철수 시기인 1988–1989년 아프가니스탄 대사를 겸임하여 무자헤딘 지도자들로부터 철수 부대에 대한 사격 금지 보장을 받아냈다. 군축 수석협상가로서 1987년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체결을 이끌었으며, 아나톨리 도브리닌 아래 워싱턴 대사대리와 인도·프랑스 대사를 거쳐 소련의 마지막 유엔 상임대표와 러시아 초대 주미 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에도 유엔 사무차장으로서 쿠웨이트 실종자 및 재산 반환을 조정하는 임무를 죽을 때까지 수행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2–1963 외교·국제활동 · 소련 · 외교
경력 연표
- 1952–1963소련 외무부 유럽부·국제기구부, 유엔 대표부
- 1966–1977주미 소련 대사관 참사관·공사참사관, 워싱턴 대사대리
- 1978–1983주인도 소련 대사
- 1983–1986주프랑스 소련 대사
- 1986–1990소련 외무부 제1차관, INF 조약 수석협상가
- 1988–1989주아프가니스탄 대사 겸임, 소련군 철수 외교
- 1990–1994유엔 주재 소련·러시아 상임대표
- 1994–1998주미 러시아 대사
관련 역사 사건
쿠웨이트 실종자·재산 반환 고위 조정관 (2000–2007)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2000년 2월 14일, 1999년 12월 17일 채택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284호에 따라 보론초프를 이라크의 쿠웨이트 국민 및 제3국 국민 송환·유해 반환과 쿠웨이트 재산 반환 문제를 다루는 고위 조정관에 임명했다. 결의 1284호는 사무총장에게 이라크의 이행 상황을 넉 달마다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그의 소임은 당사자들의 노력을 독려·조정하고 안보리가 상황을 정기적으로 통보받도록 하는 것이었고, 이라크 내 대규모 매장지의 실제 조사와 발굴은 쿠웨이트 수색평가팀이 맡았다. 그는 뉴욕과 제네바, 중동에서 관련 당사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났다.
이 문제의 제도적 배경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었다. 휴전 조건을 정한 결의 686호와 687호 이후 국제적십자위원회의 후원 아래 3자위원회가 구성되어 실종 군인과 민간인의 생사를 확인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이라크는 온전히 협력하지 않다가 1998년 12월 위원회에서 탈퇴했다. 2002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이라크는 외교적 압력 속에 참여를 재개했고,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에는 연합국 임시관리당이 위원회와의 협력을 이어갔다.
2003년 8월 사무총장은 3자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루는 주된 기제임을 강조하며 그해 12월 다음 보고서 제출과 함께 조정관 임무를 종료하는 방안을 안보리에 권고했다. 쿠웨이트는 이 문제를 계속 다룰 것을 강하게 요구하며 임무 연장을 바랐고, 안보리는 의장 성명을 통해 조정관의 업무를 계속하게 하되 임무를 계속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에도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2005년 12월 사무총장의 마지막 보고서는 추가로 확인된 유해가 없다고 밝혔고, 쿠웨이트 수색팀은 안보 문제로 이라크에 들어가지 못했다. 보론초프는 이 문제를 두고 한 해 세 차례가량 안보리에 보고했다.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 쿠웨이트에서 협의를 갖고 사무총장의 최신 보고서를 준비했으며, 2007년 12월 12일 모스크바에서 별세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표하고 쿠웨이트 문제에 바친 헌신과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