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정치국 회의에서 솔로비요프는 레닌그라드 당 지도부 7명 전원이 낙선했다고 보고하며, 유권자들이 후보 개인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 자체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닌그라드 지하철 건설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기술 관료로 성장한 후 당 기구로 옮겨갔다. 1985년 레닌그라드 주당위 제1서기와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르며 페레스트로이카 초기 소련 제2도시를 책임졌다. 1989년 3월 소련 인민대표대회 선거에서 단독 출마했으나 유권자 60%가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충격적 패배를 당했으며, 레닌그라드 당 지도부 7명 전원이 낙선한 이 사건은 당 권위 붕괴를 상징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경력 연표
- 1951–1973렌메트로스트로이 근무, 수석기술자 거쳐 국장
- 1973–1974레닌그라드 시집행위원회 부의장
- 1974–1975레닌그라드 주당위 서기
- 1975–1978레닌그라드 주당위 제2서기
- 1978–1984레닌그라드 시당위 제1서기
- 1984–1985소련 산업건설부 장관
- 1985–1989레닌그라드 주당위 제1서기 (1986년부터 정치국 후보위원 겸임)
관련 역사 사건
레닌그라드 지하철 건설
솔로비요프는 1951년 레닌그라드 철도기술자대학을 졸업한 직후 레닌그라드 지하철 건설 현장에 투입되어 교대장으로 출발했다. 곧 현장 책임자로 승진했고, 1961년에는 렌메트로스트로이의 수석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직접 건설에 참여한 역으로는 파르크 포베디, 플로샤디 미라, 넵스키 프로스펙트, 고리콥스카야, 페트로그라츠카야, 모스콥스카야 등 1·2기 노선의 주요 역들이 포함된다. 특히 네바 강 하저 터널 공사와 코벤스키 침수층 돌파 등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구간들을 지휘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렌메트로스트로이 국장으로 재임하며 레닌그라드 지하철 건설 전체를 총괄했다. 이 시기 그의 지휘 아래 넵스코-바실레오스트롭스카야(3호선) 전 구간이 개통되었고(1967), 옐리자롭스카야·로모노솝스카야 역(1970), 즈뵤즈드나야·쿱치노 역과 전동차 기지(1972)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솔로비요프는 레닌그라드 지하철 건설을 위한 최초의 종합 기술발전계획을 직접 수립했으며, 이는 이후 세대의 지하철 건설자들에게 방법론적 기반으로 계승되었다. 또한 키롭스코-비보륵스카야(1호선)의 북부 연장 공사(플로샤디 레니나 역에서 그라즈단카 방면 7개 역)도 그가 착수시킨 사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