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赵紫阳
중국 중국 1919–2005 ↓ 실각 1989 · 연금 중 사망

쓰촨의 농업개혁에서 총서기까지, 1989년 계엄에 반대해 15년 연금으로 생을 마친 개혁가

1980~1987년 총리, 1987년 총서기로 정치체제 개혁을 맡았으나 1989년 톈안먼 시위 지지로 실각해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에 있었다

허난 출신으로 광둥의 지방 간부였다가 문화대혁명에서 실각했고, 1975년 쓰촨 제1서기로 복귀해 농가생산책임제와 기업 자율화 실험으로 「먹으려면 자오쯔양을 찾으라」는 말을 낳았다. 1980년 총리, 1987년 총서기가 되어 가격개혁과 정치체제 개혁 구상을 추진했다. 1989년 5월 학생 시위에 대한 계엄에 반대해 광장에서 학생들에게 「우리는 너무 늦게 왔다」고 말한 뒤 실각했고, 이후 2005년 죽을 때까지 베이징 자택에 연금되었다. 몰래 녹음한 회고록이 사후 홍콩에서 출간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9년 5월: 계엄 반대와 실각

후야오방 추모에서 시작된 시위가 4월 26일 『인민일보』 사설로 「동란」으로 규정되자 자오쯔양은 5월 4일 아시아개발은행 연설에서 학생들의 요구가 애국적이라며 대화를 제안해 강경파와 갈라섰다. 고르바초프 방중 기간 단식 시위가 확대되는 가운데 5월 17일 덩샤오핑 자택 회의는 계엄을 결정했고, 자오쯔양은 이에 반대하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5월 19일 새벽 그는 원자바오와 함께 광장을 찾아 학생들에게 「우리는 너무 늦게 왔다」고 말했고, 이것이 마지막 공개 출현이 되었다. 6월 4일 진압 뒤 6월 하순의 4중전회는 그를 「동란 지지와 당 분열」로 총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해임했다. 그는 당적은 유지한 채 기소 없이 연금되었고,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연금 기록과 회고록은 지도부 결정 과정에 관한 드문 내부 증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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