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S 중전차를 만든 탱크그라드의 수석 설계자
동료 설계자가 남긴 말: '코틴은 누군가를 낚아채지 않으면 밤에 잠을 못 이룬다.' 그의 전차들에는 키로프, 보로실로프, 스탈린의 이름이 붙었다.
소련 중전차 설계의 거장으로, KV 계열과 IS(이오시프 스탈린) 중전차, SU-152·ISU-152 자주포를 세상에 내놓은 군수 기술자이자 행정가. 1937년 29세에 키로프 공장 수석 설계자가 되어 T-28 개량을 시작으로, 에스파냐 내전의 교훈을 반영해 대전차 방어를 뚫을 중장갑 전차 개발에 착수했다. 독소전쟁 발발 후 부전차공업인민위원으로서 레닌그라드에서 첼랴빈스크까지 공장 대피를 진두지휘해 '탱크그라드'를 건설했고, 전쟁 기간 1만 8천 대의 전차와 자주포를 쏟아냈다. 전후에도 PT-76 수륙양용전차, T-10 중전차, K-700 트랙터를 개발하며 민수 분야까지 설계 영역을 넓혔고, 1968년 방위공업차관으로 군수 행정의 정점에 올랐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2–1937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32–1937육군기계화·차량화 아카데미 연구부문 엔지니어, 설계국장
- 1937–1968키로프 공장 SKB-2 수석 설계자 (레닌그라드/첼랴빈스크)
- 1941–1943소련 전차공업 부인민위원 겸 수석 설계자
- 1943–1945제100실험전차공장장 겸 수석 설계자 (첼랴빈스크)
- 1949–1968VNII-100 전차연구소 소장 겸 수석 설계자
- 1968–1972소련 방위공업차관
관련 역사 사건
첼랴빈스크의 전시 생산과 설계
1941년 7월 키로프 공장 설비의 우랄 이전이 시작됐고, 10월 6일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은 탱크공업인민위원부 소속 키로프 공장으로 재편되어 KV 전차 생산 단지에 편입됐다. 이후 ‘탱크그라드’라 불린 이 단지의 수석 설계자로 코틴이 임명됐으며, 10월 9일에는 전차공업 부인민위원도 겸임했다. 생산 조직과 설계를 함께 맡은 그의 전시 업무는 1943년 8월 부인민위원직을 떠나 첼랴빈스크 제100실험전차공장장 겸 수석 설계자가 되면서 계속됐다.
코틴이 이끈 설계진은 KV 전차를 개량하고, 1942년 여름부터 차기 중전차 IS 개발에 착수했다. 1943년에는 122밀리미터 포를 장착한 IS-2가 등장했고, 1945년 1월 IS-3 생산도 시작됐으나 전쟁 중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KV와 IS 차체를 바탕으로 SU-152, ISU-152, ISU-122 자주포도 개발됐다. 제100공장은 실험 설계 업무를 담당했고, 전선 전역의 수리 공장과 여단이 전차를 현장에서 정비하도록 지원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코틴의 집단은 전투 차량 50종 이상을 설계했으며, 탱크그라드는 전차와 자주포 1만 8천 대 이상을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