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관리에서 부인민위원이 된 이례
1923년 당내 토론에서 트로츠키 측 결의안에 투표했다. 15년 후 스탈린은 이를 기억했고, 1938년 10월 3일 카자흐스탄 리데르 광산 책임자로 좌천되었으나 부임도 못 가고 19일 만에 체포되었다.
예조프의 NKVD 부인민위원이 된 이례적 무역 관료. 키예프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독일 주재 무역대표를 거쳐 1936년 예조프에게 발탁돼 NKVD 행정·보급을 총괄했다. 1938년 숙청으로 체포·처형됐다.
경력 연표
- 1932–1936베를린 주재 무역대표부 부대표, 대외무역인민위원부 수입국장
- 1936–1937NKVD 행정경제국장
- 1937국가보안총국 제3부 부부장, 제12부장
- 1938내무부인민위원
- 1938–1940체포,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혁명, 내전, 그리고 당 기구
주콥스키는 키예프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징집되었다. 1917년 2월 혁명 후 키예프 군사학교에 입학했고, 같은 해 8월 생도 신분으로 볼셰비키당에 입당했다. 10월에 소위로 임관했으나 12월 제대 후 키예프로 돌아와 당 기관지 『프롤레타르스카야 지즌』과 『이즈베스티야』에서 일했다.
내전이 본격화되자 그는 정치장교로 두각을 드러냈다. 1919년 키예프 현 부군사위원을 거쳐 투르케스탄 전선 제4군 정치부 부장, 제2노동군 정치부장, 남서전선 편성관리국 정치부장을 역임했다. 1921년 타슈켄트로 옮겨 투르케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장을 지냈고, 이듬해 발트함대 정치총국장 대리를 맡았다.
1922년부터 모스크바의 당 중앙기구에서 발레리안 쿠이비셰프의 비서로 일하며 당내 행정 감각을 쌓았다. 이 시기 모스크바 고등기술학교 화학부에서 수학했고, 동문인 옐레나 게오르기예브나와 결혼했다. 1924년부터 외교 및 대외무역 분야로 진출해 교통인민위원부, 최고경제회의를 거쳐 1925년 베를린 주재 소련 통상대표부의 최고경제회의 전권위원으로 파견되었다.
1932년 베를린 주재 통상대표부 부대표 겸 대외무역인민위원부 콜레기야 위원이 되었고, 1934년 제17차 당 대회에서 중앙통제위원회 산하 당통제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대외관계 그룹을 이끌었다. 이 무역·당통제 경력 전체가 그를 전형적인 체키스트가 아닌, 예조프의 개인적 신임으로 NKVD에 들어온 이례적 인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