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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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키 팔

Teleki Pál

「붉은 지도」를 만든 지리학자로 두 차례 총리를 지내고 1941년 독일군 통과에 항의하듯 자살한 정치인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트란실바니아 귀족 가문 출신의 지리학자로, 대학 교수이자 학술원 회원, 헝가리 스카우트 연맹 수장이었다. 1918~1919년 1910년 인구조사에 바탕한 민족 분포도 「붉은 지도」를 만들었다. 1920년 외무장관으로 트리아농 조약 조인을 지켜보았고, 7월 총리가 되어 누메루스 클라우수스법 시기의 정부를 이끌다 1921년 4월 물러났다. 1939년 다시 총리가 되어 제2차 유대인법의 전문을 쓰고 제3차 유대인법을 준비했다. 1941년 4월 3일 독일군의 유고슬라비아 침공 통과가 확실해지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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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1919「붉은 지도」 작성
  • 1920외무장관, 트리아농 조약 조인
  • 1920–1921총리
  • 1938교육장관
  • 1939–1941총리
  • 1941자살

케레스테시피셰르 페렌츠

Keresztes-Fischer Ferenc
헝가리 국가기관 보수주의·기독교민주주의 헝가리 헝가리 1881–1948 ○ 망명 중 폐암으로 사망

베틀렌의 측근으로 두 차례 내무장관을 지내며 좌우 급진 운동을 경찰력으로 억누른 보수파 정치인

페치의 가톨릭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난 변호사로, 1921년부터 버러녀주, 1925년부터 쇼모지주의 주지사를 지냈다. 베틀렌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 1931~1935년과 1938~1944년 내무장관을 맡아 좌우 양쪽의 급진 운동에 대한 경찰 탄압을 지휘했고, 1939년 헝가리주의 운동을 금지했다. 1941년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에 홀로 반대했고, 텔레키 자살 뒤와 바르도시 사임 뒤 잠시 총리 직무를 대행했다. 1944년 독일 점령 때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1948년 빈에서 폐암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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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페치에서 변호사 개업
  • 1921–1931버러녀주·쇼모지주 주지사
  • 1931–1935내무장관
  • 1938–1944내무장관
  • 1941총리 직무 대행
  • 1942총리 직무 대행
  • 1944–1945게슈타포에 체포, 수용소

굄뵈시 줄러

Gömbös Gyula

국민군 조직을 주도하고 1932~1936년 총리로서 헝가리를 이탈리아·독일 쪽으로 이끈 우익 급진파 장교

톨너주 무르거에서 마을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1919년 세게드에서 준군사 단체 MOVE를 만들고 호르티의 국민군 조직을 주도했으며, 1921년 카를 왕의 복귀를 무력으로 막는 데 앞장섰다. 1929년 베틀렌 정부의 국방장관이 되었고 1932년 총리가 되었다. 무솔리니와 손잡고 1934년 로마 의정서에 서명했으며, 히틀러를 찾아간 첫 외국 정부 수반으로서 독일과 무역 협정을 맺었다. 1936년 뮌헨에서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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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MOVE 결성, 국민군 조직
  • 1921카를 왕 복귀 저지
  • 1929국방장관
  • 1932–1936총리
  • 1934로마 의정서 서명

더라니 칼만

Darányi Kálmán

1936~1938년 총리로서 죄르 강령을 발표하고 제1차 유대인법을 의회에 낸 굄뵈시의 후임자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09년 페슈트주 공무원으로 출발했고, 혁명 뒤 죄르주·코마롬주의 주지사를 지냈다. 1927년 국회의원이 되었고 1935년 굄뵈시 내각의 농업장관이 되었다. 1936년 10월 굄뵈시의 후임 총리가 되어 베틀렌 노선의 헌정 질서 회복을 내세웠고, 1937년 국민의지당을 금지하고 살러시를 투옥했다. 1938년 3월 죄르 강령을 발표했으나, 오스트리아 병합 뒤 친독 인사를 입각시키고 극우 세력과 협상하다 5월 사임했다. 그의 정부가 낸 제1차 유대인법은 임레디 정부 아래 통과되었고, 그는 1938년 12월부터 죽을 때까지 하원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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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페슈트주 공무원
  • 1920년대죄르주·코마롬주 주지사
  • 1927국회의원
  • 1935농업장관
  • 1936–1938총리
  • 1938죄르 강령 발표
  • 1938–1939하원 의장

칼러이 미클로시

Kállay Miklós
헝가리 국가기관 보수주의·기독교민주주의 헝가리 헝가리 1887–1967 → 망명지에서 사망

독일의 유대인 이송 요구를 거부하며 서방 연합국과 비밀 휴전을 꾀한 전시 총리

서볼치 지방의 오랜 젠트리 가문 출신으로 주지사를 거쳐 1932~1935년 농업장관을 지냈고 베틀렌 계열의 보수파였다. 1941년 상원에서 제3차 유대인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1942년 3월 호르티의 요청으로 총리가 되어 대소련 전쟁을 이어 가면서도 독일의 유대인 이송 요구를 거부하고 서방 연합국과 휴전을 협상했다. 1943년 9월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비밀 예비 휴전이 맺어졌으나, 1944년 3월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자 물러나 튀르키예 공사관에 숨었다. 1944년 10월 붙잡혀 다하우와 마우트하우젠에 갇혔다가 1945년 풀려났고, 1946년 망명해 뉴욕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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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1929서볼치 주 주지사
  • 1929–1931상무부 차관
  • 1932–1935농업장관
  • 1942–1944총리, 연합국과 비밀 휴전 협상
  • 1944–1945튀르키예 공사관 피신, 다하우·마우트하우젠 수감
  • 1946–1967망명, 미국 정착

임레디 벨러

Imrédy Béla

외교를 독일 쪽으로 돌리고 제2차 유대인법을 낸 뒤 유대계 조상이 드러나 물러난 총리

부다페스트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재무부에서 일한 경제 전문가로, 1932년 굄뵈시 내각의 재무장관, 1935년 국립은행 총재가 되었다. 1938년 5월 총리가 되어 그해 가을부터 외교를 독일·이탈리아 쪽으로 돌렸고, 그의 재임 중 제1차 빈 중재로 남부 슬로바키아가 헝가리에 돌아왔다. 독재적 개편과 제2차 유대인법을 추진했으나 1939년 2월 정적들이 그의 유대계 조상을 밝혀내 사임했다. 1940년 친파시스트 정당 헝가리 쇄신당을 세웠고, 1944년 독일 점령 뒤 스토여이 내각의 장관을 지냈다. 1946년 인민재판소의 사형 선고로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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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1932헝가리 국립은행 이사
  • 1932–1935굄뵈시 내각 재무장관
  • 1935–1938헝가리 국립은행 총재
  • 1938–1939총리, 제2차 유대인법 제출
  • 1940–1944헝가리 쇄신당 창립·당수
  • 1944스토여이 내각 경제 담당 장관

엔드레 라슬로

Endre László
헝가리 국가기관 파시스트·나치 헝가리 헝가리 1895–1946 ✕ 처형(교수형)

1944년 내무부 차관으로 버키 라슬로와 함께 헝가리 유대인의 게토 수용과 아우슈비츠 이송을 맡은 극우 관료

어보니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경기병 장교로 싸웠고, 평의회 공화국이 무너진 뒤 MOVE 등 반혁명 단체에 가담해 잔혹함으로 이름났다. 1923년부터 15년 동안 괴될뢰 수석 군수, 1938년 페스트주 부지사를 지내며 반유대법이 미흡하다며 해수욕장 출입 금지 등을 독자적으로 가했다. 1944년 독일 점령 뒤 여로시 언도르 밑에서 내무부 차관이 되어 유대인 게토 수용과 이송에 폭넓은 권한을 받았고, 버키 라슬로와 함께 아이히만을 도와 5~7월 40만 명이 넘는 헝가리 유대인을 이송했다. 9월 해임되었으나 화살십자당 집권 뒤 작전 지역 민정 담당 정부위원이 되었다. 1945년 달아났다가 미군에 붙잡혀 넘겨졌고, 1946년 사형 선고를 받아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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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18경기병 장교
  • 1919–1921반혁명 단체 활동
  • 1923–1938괴될뢰 수석 군수
  • 1938–1944페스트주 부지사
  • 1944내무부 행정 차관
  • 1944–1945작전 지역 민정 담당 정부위원
  • 1946인민재판소 사형 선고,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