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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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사전독립소농당

버이치질린스키 엔드레

Bajcsy-Zsilinszky Endre
헝가리 민족주의 헝가리 헝가리 1886–1944 ✕ 처형(교수형)

인종수호당에서 출발해 노비사드 학살을 의회에서 고발하고 반나치 봉기를 준비하다 처형된 민족 급진주의 정치인

서르버시에서 태어났다. 1923년 굄뵈시와 함께 인종수호당을 세웠으나 차츰 멀어져 1930년 민족 급진당을 만들었고, 1930년대에는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1939년 독립소농당으로 다시 의원이 되었다. 1941년 말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해 『네프서버』 성탄호에서 전쟁 이탈과 토지개혁, 보통선거를 위한 「독립전선」을 촉구했고, 1942년 1월 노비사드 학살을 앞두고 바르도시에게 경고한 뒤 의회에서 이를 「국가가 조직한 포그롬」이라 고발했다. 1944년 3월 19일 독일 점령 때 체포를 막으려 총을 쏘다 부상한 채 끌려갔고, 10월 풀려난 뒤 11월 헝가리 민족봉기 해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뽑혔으나 다시 체포되어 12월 24일 쇼프론쾨히더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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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법학 박사
  • 1914–1918경기병으로 참전
  • 1922통일당 의원 당선
  • 1923굄뵈시와 인종수호당 결성
  • 1930민족 급진당 창당
  • 1939–1944독립소농당 의원
  • 1944해방위원회 위원장, 체포되어 처형

틸디 졸탄

Tildy Zoltán
독립소농당 농민주의·농민정당 헝가리 헝가리 1889–1961 ○ 봉기 진압 후 수감, 1959년 석방

소련 탱크 앞에서 중립을 선언한 목사 출신 대통령

1956년 11월 1일 기자회견에서 소련의 재침공 가능성을 묻자 "그런 비극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개혁교회 목사에서 독립소지주당 창립자·지도자로 헝가리 전후 민주화의 얼굴이 된 정치인. 1945년 총선 승리로 총리에 오르고 이듬해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공산당의 살라미 전술로 1948년 사위의 조작된 반역 혐의를 빌미로 사임당하고 8년간 연금되었다. 1956년 10월 너지 임레의 혁명 정부에 합류해 11월 1일 바르샤바조약 탈퇴와 중립 선언에 동참했고, 봉기 진압 후 6년형을 받았다. 1989년 대법원이 형을 무효화하며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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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1929개혁교회 목사, 교회 정기간행물 편집
  • 1936–1944소지주당 국회의원, 전쟁 탈퇴 압박, 독일 점령 후 은신
  • 1945–1946총리
  • 1946–1948공화국 대통령, 강제 사임
  • 1948–1956가택 연금
  • 1956.10–11너지 임레 혁명정부 국가장관
  • 1958–19596년형 선고, 1959년 사면
  • 1989복권

도비 이슈트반

Dobi István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1898–1968 ○ 자연사

소농당 출신의 명목상 국가원수

1953년 6월 소련 지도부는 실권이 거의 없던 도비를 헝가리 대표단에 포함했다. 모스크바의 초청은 그의 국가원수직이나 소농당 경력에 대한 오해, 또는 국가 간 회담임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쇠니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년만 마치고 날품팔이로 일했다. 1919년 평의회 공화국을 지지했고 농업노동자 운동에 참여했다. 소농당 좌파 지도자로 공산당과 손잡아 1948~52년 총리, 1952~67년 대통령평의회 의장으로 명목상 국가원수를 지냈다. 1953년 6월 크렘린 회담에 초청되었지만, 라이너는 소련 지도부가 그의 실권이나 농민 사이의 권위를 잘못 짐작한 탓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협동조합의 강제 해산을 두려워해 몰로토프의 해산 제안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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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1952헝가리 총리를 지냈다.
  • 1952–1967헝가리 인민공화국 대통령평의회 의장으로 국가원수를 지냈다.

너지 페렌츠

Nagy Ferenc

소련의 압박에 사임당한 소농 출신 초대 총리

스위스 국경에서 아들을 돌려받는 대가로, 자동차 보닛 위에서 사임서에 서명했다.

소농 출신의 정치가로, 소련 점령 하 헝가리 제2공화국의 초대 총리(1946~47). 1930년 틸디 졸탄과 소농당을 세워 사무총장을 지내고 1945년 총선 57% 압승 뒤 국회의장을 거쳐 총리에 올라 펭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포린트 도입으로 극복했다. 그러나 라코시 공산당이 「살라미 전술」로 소농당 의원을 제거하자 스위스 휴가 중 아들을 인질로 잡혀 사임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회고록 「철의 장막 뒤의 투쟁」(1948)은 동유럽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서방 서술의 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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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1945소농당 공동 창립·초대 사무총장, 반전·반나치 활동
  • 1944.04–10게슈타포 투옥, 석방 뒤 화살십자 정권 하 은신
  • 1945–1946복구장관·국회의장·국민최고회의 위원
  • 1946–1947제2공화국 초대 총리: 포린트 도입, 파리 평화조약 서명
  • 1947.06스위스에서 사임 강요, 미국 망명
  • 1947–1970망명 정치, 국제농민연합 부회장·회장

코바치 벨러

Kovács Béla
헝가리 농민주의·농민정당 헝가리 헝가리 1908–1959 ○ 자연사

소련군에 끌려가 소농당 해체의 방아쇠가 된 사무총장

체포되며 남긴 말: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 죄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평생의 일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농 출신의 농민 정치가로, 소학교 네 학년만 마친 뒤 1933년 소농당에 입당해 1945년 사무총장으로 전후 최대 정당을 이끌었다. 틸디·너지 정부의 농업장관으로 지주제 해체와 토지개혁을 밀었고, 공산당의 살라미 전술에 맞서 당의 독립을 지켰다. 1947년 2월 국회가 면책특권 박탈을 거부하자 소련군이 조작된 간첩 혐의로 그를 체포해 굴라크로 끌고 갔고, 이 납치는 너지 페렌츠 총리의 사임과 소농당 해체의 방아쇠가 되었다. 1955년 귀환해 1956년 너지 임레 혁명정부의 농업장관으로 복귀했고, 진압 뒤 카다르 체제에 협력하다 195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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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1944소농당 입당, 버러녀 조직가·반나치 저항
  • 1944–1945내무부 정치 차관(데브레첸 임시정부)
  • 1945–1946농업장관
  • 1945.08–1947소농당 사무총장
  • 1947–1955소련군 체포, 굴라크 20년형, 1953년 모스크바 수감
  • 1955–1956헝가리 이송, 1956.4 석방
  • 1956.10–11너지 임레 혁명정부 농업장관·국가장관
  • 1957–1959카다르 체제 협력, 1958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