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 부대를 이끌어 잔게주르를 지킨 아르메니아 페다이 지휘관
1865년 오스만 제국 샤빈카라히사르에서 태어나 다슈나크의 페다이 부대를 이끌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군의 제1아르메니아 의용대대를 지휘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바투미 조약을 인정하지 않은 그는 1918년 특별타격사단을 이끌고 잔게주르를 장악했다. 역사가 도널드 블록섬은 그가 무슬림 마을을 파괴해 이 지역을 아르메니아인만의 땅으로 바꾸려 했다고 보고, 안트라니그 찰라비안은 그가 잔게주르의 아르메니아인을 지켰다고 본다. 1918년 12월 영국군의 요청으로 카라바흐 진격을 멈추었고, 1919년 부대를 해산했다. 1927년 미국 프레즈노에서 숨졌다.
1878년 카잔 근처 타슈수 마을에서 태어나, 이스마일 가스프린스키의 권유로 1901~1906년 파리 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했다. 1906년 「이티파크 알무슬리민」 중앙위원이 되었고, 카잔 현에서 제2·3대 국가 두마 의원으로 뽑혔다. 1917년 전러시아 무슬림 협의회 집행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918년 1월 5일 내부 러시아·시베리아 무슬림 민족·문화 자치 기관인 밀리 이다레의 의장에 뽑혀 이델-우랄 국가 수반이 되었다. 볼셰비키가 카잔·우파 현을 장악하자 핀란드로 망명했고,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이델-우랄 주민의 권리를 호소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1925년 튀르키예로 가 법사학 교수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57년 이스탄불에서 숨졌다.
1884년 얘므새의 가난한 농업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903년 러시아 군에 들어갔고, 러일전쟁에 중위로 참전한 뒤 1905년 혁명의 사회주의자들과 어울리다 모스크바에서 투옥되고 군에서 쫓겨났다. 핀란드로 돌아와 투르쿠·비푸리·코트카의 노동 신문에서 일하며 사회민주당 당직도 맡았다. 1917년 10월 헬싱키에서 노동자 질서수비대를 조직했고, 11월 총파업 뒤 그 총사령관이 되었다. 1918년 1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술에 빠지고도 볼셰비키에게서 무기와 탄약을 대량으로 사들였으나, 1월 28일 에로 하팔라이넨으로 교체되었다. 탐페레 전투 마지막 밤 포위를 뚫고 나왔지만 라흐티 부근에서 붙잡혀 1918년 5월 헨날라 수용소에서 총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