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밀라다 호라코바

Milada Horáková
반체제 인사 체코슬로바키아 체코 1901–1950 ✕ 처형

나치와 공산당 모두에 맞서다 1950년 조작된 반역 재판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체코의 여성 정치가

여성 권리 운동가이자 반나치 저항 활동가였던 호라코바는 전후 의원으로 활동하다 1948년 사임했다. 1949년 체포되어 조작된 반역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0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프라하 출신의 법률가로, 전간기 여성 권리 운동에 앞장섰다. 독일 점령기 지하 저항 운동에 참여했다가 1940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테레진과 독일의 감옥을 거쳤고,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풀려났다. 전후 국민사회당 의원이 되었고 1947년 여성 잡지 『블라스타』를 창간했다. 1948년 2월 쿠데타 직후 항의의 뜻으로 의원직을 내놓았지만 망명하지 않고 프라하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1949년 9월 체포되어 고문을 동반한 신문 끝에 음모·반역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50년 6월 27일 판크라츠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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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프라하 시의회 복지부서 책임자가 되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사회당에 가입했다.
  • 1945독일 점령기 저항 활동으로 수감된 뒤 연합군에 의해 석방되어 프라하로 돌아왔고, 국민사회당에 재가입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 19482월 공산당 장악 뒤 의원직에서 사임했다.
  • 19499월 27일 불법 정치 모임과 관련해 체포되었다.
  • 1950반역·간첩 혐의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27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얀 파토치카

Jan Patočka
반체제 인사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907–1977 ○ 자연사

진실의 책임을 시민적 행동으로 옮긴 현상학자

1977년 3월 3일, 그는 헌장 77 대변인으로 말하겠다며 불러낸 국가보안기관의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얀 파토치카는 후설과 하이데거에게 배운 체코 철학자로서 현상학과 역사철학을 발전시켰고, 유럽의 위기와 인간의 영혼 돌봄을 탐구했다. 공산당 가입을 거부한 뒤 여러 차례 대학 강단과 출판에서 배제되었지만, 연구와 가정 세미나를 이어 갔다. 1977년 그는 바츨라프 하벨, 이르지 하예크와 함께 헬싱키 최종의정서와 시민권 보장을 요구한 헌장 77의 첫 대변인이 되었다. 반복된 국가보안기관 조사 뒤 건강이 악화되었고, 그는 3월 13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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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1931프라하 카렐대학교에서 철학·슬라브어문학·로망스어문학을 공부하고 철학 박사학위를 받음
  • 1933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현상학을 배움
  • 1936–1939카렐대학교에서 강의 자격을 취득하고 철학 저널 《체코의 정신》 편집을 맡음
  • 1945–1950전후 카렐대학교와 마사리크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나 공산당 가입 거부 뒤 대학을 떠남
  • 1964–1972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에서 일하고 1968년 카렐대학교 교수로 복귀했으나 1972년 퇴직당함
  • 1973–1976가정 세미나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플라톤과 유럽》과 《역사철학의 이단적 에세이》를 발전시킴
  • 1977바츨라프 하벨·이르지 하예크와 함께 헌장 77의 첫 대변인으로 활동

프란티셰크 크리겔

František Kriegel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반체제 인사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1908–1979 ○ 당 제명 · 의사면허 박탈 1969

모스크바 의정서 서명을 거부한 유일한 프라하의 봄 지도자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 앞에 선 크리겔은 이렇게 말했다: '쏘든지 시베리아로 보내든지, 나는 서명하지 않겠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이자 의사. 스페인 내전에서 국제여단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1968년 프라하의 봄에서 KSČ 상임간부회 위원 겸 민족전선 의장으로 개혁을 이끌었다.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당일 체포되어 모스크바로 연행되었고, 26명의 체코슬로바키아 정치인 중 유일하게 모스크바 의정서 서명을 거부했다. 이후 당에서 축출되고 의사 면허도 박탈당했으나, 1977년 헌장 77에 최초 서명하며 생애 마지막까지 반체제 인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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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KSČ 입당
  • 1936–1939스페인 내전 국제여단 군의관
  • 1940–1945중국-버마 전선 군의관
  • 1949–1952보건부 차관
  • 1964–1968국민의회 의원 → KSČ 중앙위원
  • 1968.04–08민족전선 의장 겸 KSČ 상임간부회 위원
  • 1968.08모스크바 의정서 서명 거부
  • 1969–1977당 제명·의사면허 박탈, 이후 헌장 77 최초 서명

이르지 하예크

Jiří Hájek

국제법의 언어를 시민권 투쟁으로 돌린 외교관

1968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소련의 침공을 “점령”이라고 규정하며 항의했다.

이르지 하예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프라하의 봄 개혁과 그 좌절을 모두 경험했다. 1968년 소련 주도의 침공을 유엔에서 점령이라고 규정하며 항의한 뒤 관직과 공산당 지위를 잃었고, 국제적 약속이 국내 권력보다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그는 1977년 바츨라프 하벨, 얀 파토치카와 함께 샤르타 77의 첫 대변인이 되어 헬싱키 최종의정서의 인권 조항을 시민적 책임의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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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1945나치 독일에 투옥
  • 1945–1948체코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의원·노동운동 간부
  • 1950–1953정치·경제과학대학 총장
  • 1955–1958영국 주재 대사
  • 1958–1965외무차관·유엔 주재 대표
  • 1965–1968교육부 장관·외무부 장관
  • 1977–1979샤르타 77 첫 대변인
  • 1988–1990체코슬로바키아 헬싱키위원회 창립자·의장

루드비크 바출리크

Ludvík Vaculík

20년간 단 하나의 인간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이천 마디 말」로 저항한 체코의 작가

「지난 20년 동안 이 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인간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1967년 작가대회에서 선언한 바출리크 앞에서 당 대표단은 퇴장했고 청중은 긴 박수를 보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이자 공산당원이었다가 1967년 제4차 체코슬로바키아 작가대회에서 노보트니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연설로 당에서 축출되었다. 1968년 6월 대표작 「이천 마디 말」을 발표하여 시민의 자발적 행동과 개혁 심화를 촉구했고, 이는 프라하의 봄을 상징하는 문헌이 되었으나 소련의 개입 구실로도 이용되었다. 침공 이후 출판이 전면 금지되었으나, 지하 출판사 페틀리체를 설립하여 하벨·클리마 등 금지 작가들의 작품을 17년간 펴냈다. 1977년 헌장 77의 서명자로서 체제 비판을 이어갔고, 1989년 이후 『리도베 노비니』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매주 체코 사회를 논평하며 2015년까지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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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1967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당원
  • 1959–1965체코슬로바키아 방송 청년 프로그램 편집자
  • 1965–1969『리테라르니 노비니』(후에 『리테라르니 리스티』) 편집자
  • 1967제4차 체코슬로바키아 작가대회 연설로 당에서 축출
  • 1968「이천 마디 말」 선언문 작성 및 발표
  • 1969–1989출판 금지, 지하 출판 활동
  • 1973–1990사미즈다트 출판사 페틀리체 설립·운영
  • 1977헌장 77 서명

즈데네크 믈리나르시

Zdeněk Mlynář

사회주의를 민주화하려 한 개혁 공산주의자

옛 룸메이트 고르바초프를 1967년 찾아가 개혁 구상을 설명했을 때, '그가 내 말을 아주 잘 이해하는 듯했다'고 믈리나르시는 회고했다.

즈데네크 믈리나르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정치가이자 법률가로, 사회주의를 민주적 통제와 시민의 능동성에 결합하려 했다. 그는 1968년 프라하의 봄에서 중앙위원회 서기로 일하며 알렉산데르 둡체크 주변의 개혁 지도부에 참여했고, 행동강령을 만든 정치·법률 연구팀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바르샤바조약군의 침공 뒤 모스크바 의정서에 서명했고 곧 개혁 노선의 한계와 점령의 현실에 부딪혀 당과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헌장 77에 서명하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해 정치학자이자 프라하의 봄을 성찰한 저술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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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1955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부에서 수학
  • 1955–1956프라하 검찰총국에서 근무
  • 1956–1968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국가·법 연구소 연구자
  • 1967–1968공산당 정치체계 개혁 연구팀 및 행동강령 작성 참여
  • 1968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프레지디엄 위원
  • 1970공산당에서 제명, 국립박물관에서 곤충학 연구
  • 1977–1997헌장 77 서명 뒤 오스트리아 망명, 인스브루크대학교 정치학 교수

바츨라프 하벨

Václav Havel
반체제 인사 체코슬로바키아 체코 1936–2011 ○ 자연사

부조리극으로 체제를 풍자하고 반체제 운동을 이끈 체코 극작가 출신 정치가

1969년 2월, 하벨은 잡지 『트바르시』에 실은 「체코의 운명?」에서 쿤데라의 낙관적 민족 서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우리 운명의 주인은 무엇보다 바로 우리 자신이며, 지리적 위치나 수백 년의 숙명 뒤에 숨는다고 우리가 해방되지는 않는다."

체코의 극작가이자 반체제 운동가, 정치가. 부조리극 『가든 파티』(1963)와 『비망록』(1965)으로 체제를 풍자하며 명성을 얻었고, 1968년 프라하의 봄 진압 후 밀란 쿤데라의 「체코의 운명」에 「체코의 운명?」으로 응답하며 반체제로 전환했다. 1977년 헌장 77을 공동 창립하고 투옥을 거듭했으며, 1989년 벨벳 혁명을 이끌어 체코슬로바키아 마지막 대통령과 체코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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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가든 파티』로 극작가 데뷔
  • 1968바르샤바조약군 침공 당시 자유 체코슬로바키아 방송으로 저항
  • 1969『트바르시』에 「체코의 운명?」 발표, 쿤데라에 반박
  • 1977헌장 77 공동 창립, 초대 대변인
  • 1979–1983반체제 활동으로 투옥, 『올가에게 보내는 편지』 집필
  • 1989시민포럼 이끌며 벨벳 혁명 주도
  • 1989–1992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93–2003체코 공화국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