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더라니 칼만

Darányi Kálmán

1936~1938년 총리로서 죄르 강령을 발표하고 제1차 유대인법을 의회에 낸 굄뵈시의 후임자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09년 페슈트주 공무원으로 출발했고, 혁명 뒤 죄르주·코마롬주의 주지사를 지냈다. 1927년 국회의원이 되었고 1935년 굄뵈시 내각의 농업장관이 되었다. 1936년 10월 굄뵈시의 후임 총리가 되어 베틀렌 노선의 헌정 질서 회복을 내세웠고, 1937년 국민의지당을 금지하고 살러시를 투옥했다. 1938년 3월 죄르 강령을 발표했으나, 오스트리아 병합 뒤 친독 인사를 입각시키고 극우 세력과 협상하다 5월 사임했다. 그의 정부가 낸 제1차 유대인법은 임레디 정부 아래 통과되었고, 그는 1938년 12월부터 죽을 때까지 하원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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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페슈트주 공무원
  • 1920년대죄르주·코마롬주 주지사
  • 1927국회의원
  • 1935농업장관
  • 1936–1938총리
  • 1938죄르 강령 발표
  • 1938–1939하원 의장

칼러이 미클로시

Kállay Miklós
헝가리 국가기관 보수주의·기독교민주주의 헝가리 헝가리 1887–1967 → 망명지에서 사망

독일의 유대인 이송 요구를 거부하며 서방 연합국과 비밀 휴전을 꾀한 전시 총리

서볼치 지방의 오랜 젠트리 가문 출신으로 주지사를 거쳐 1932~1935년 농업장관을 지냈고 베틀렌 계열의 보수파였다. 1941년 상원에서 제3차 유대인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1942년 3월 호르티의 요청으로 총리가 되어 대소련 전쟁을 이어 가면서도 독일의 유대인 이송 요구를 거부하고 서방 연합국과 휴전을 협상했다. 1943년 9월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비밀 예비 휴전이 맺어졌으나, 1944년 3월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자 물러나 튀르키예 공사관에 숨었다. 1944년 10월 붙잡혀 다하우와 마우트하우젠에 갇혔다가 1945년 풀려났고, 1946년 망명해 뉴욕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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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1929서볼치 주 주지사
  • 1929–1931상무부 차관
  • 1932–1935농업장관
  • 1942–1944총리, 연합국과 비밀 휴전 협상
  • 1944–1945튀르키예 공사관 피신, 다하우·마우트하우젠 수감
  • 1946–1967망명, 미국 정착

코바치 벨러

Kovács Béla

소련군에 끌려가 소농당 해체의 방아쇠가 된 사무총장

체포되며 남긴 말: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 죄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평생의 일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농 출신의 농민 정치가로, 소학교 네 학년만 마친 뒤 1933년 소농당에 입당해 1945년 사무총장으로 전후 최대 정당을 이끌었다. 틸디·너지 정부의 농업장관으로 지주제 해체와 토지개혁을 밀었고, 공산당의 살라미 전술에 맞서 당의 독립을 지켰다. 1947년 2월 국회가 면책특권 박탈을 거부하자 소련군이 조작된 간첩 혐의로 그를 체포해 굴라크로 끌고 갔고, 이 납치는 너지 페렌츠 총리의 사임과 소농당 해체의 방아쇠가 되었다. 1955년 귀환해 1956년 너지 임레 혁명정부의 농업장관으로 복귀했고, 진압 뒤 카다르 체제에 협력하다 195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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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1944소농당 입당, 버러녀 조직가·반나치 저항
  • 1944–1945내무부 정치 차관(데브레첸 임시정부)
  • 1945–1946농업장관
  • 1945.08–1947소농당 사무총장
  • 1947–1955소련군 체포, 굴라크 20년형, 1953년 모스크바 수감
  • 1955–1956헝가리 이송, 1956.4 석방
  • 1956.10–11너지 임레 혁명정부 농업장관·국가장관
  • 1957–1959카다르 체제 협력, 1958 국회의원

도나트 페렌츠

Donáth Ferenc
헝가리 국가기관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인 1913–1986 ○ 사후 복권, 1989년

혁명과 개혁을 잇고 독재의 상처를 짊어진 정치가

1956년 11월 4일, 너지 임레와 함께 소련의 공격을 규탄하는 성명을 작성한 뒤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도나트 페렌츠는 헝가리 공산주의 운동과 농업정책에 참여한 정치가이자 농업경제 연구자였다. 전후 토지개혁과 집단화 추진에 관여했지만, 1951년 숙청 재판으로 투옥된 뒤 복권되어 당 노선과 국가 폭력의 긴장을 직접 겪었다. 1956년 너지 임레를 지지하며 혁명을 해석하고 소련의 군사 개입을 비판한 그는 너지 임레 재판에서 1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60년 석방되었다. 이후 농업경제를 연구하고 1980년대 민주 야당의 대화를 조직했으며, 1989년 법적으로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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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4헝가리 공산당 입당, 지하 활동
  • 1937–19393월 전선 조직 참여, 국민농민당 창립 참여
  • 1945–1948국가토지정착위원회 부위원장, 농업부 정치차관
  • 1948–1951헝가리 노동인민당 중앙위원회 사무국·농촌부문 지도
  • 1951–1954숙청 재판으로 15년형, 1954년 복권·석방
  • 1956너지 임레 주변 개혁파,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 임시집행위원
  • 1958–1960너지 임레 재판에서 12년형, 1960년 특별사면 석방
  • 1976–1985협동조합 연구자, 민주 야당 연대와 모노르 회의 조직
  • 1989너지 임레 재판 판결 무효화로 사후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