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개혁과 전시 타협의 대통령
“이 괴물 같은 조약에 서명하는 손이여, 썩어라.”
퀴외스티 칼리오는 핀란드 농민정당의 지도자로서 토지개혁과 의회정치를 추진한 정치가였다. 그는 네 차례 총리와 여러 차례 의회 의장을 지냈고, 1922년 토지 없는 농민의 정착을 지원한 이른바 칼리오 법을 이끌었다. 대통령으로서 겨울전쟁을 이끌며 영토 양보에 저항했지만, 1940년 3월 모스크바 평화조약을 받아들여야 했다. 조약 서명을 두고 남긴 저주는 그해 여름 오른팔 마비로 현실의 아이러니가 되었고, 건강 악화로 사임한 뒤 같은 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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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1906핀란드 의회 신분제 의회 농민계급 대표
- 1907–1937핀란드 의회 의원, 농민연합 지도자
- 1917–1922농업 담당 장관, 독립 상원과 정부에서 재임
- 1922칼리오 법으로 불린 토지 정착 개혁 추진
- 1922–1924핀란드 총리
- 1925–1926핀란드 총리
- 1929–1930핀란드 총리
- 1936–1937핀란드 총리
- 1920–1936핀란드 의회 의장, 여러 회기 재임
- 1937–1940핀란드 대통령, 겨울전쟁과 모스크바 평화조약 시기
트란실바니아 통합을 이끈 국민농민당의 지도자, 1947년 종신형을 받고 시게트 감옥에서 죽다
1947년 11월 11일 부쿠레슈티 군사법원은 일흔네 살의 마니우에게 종신 중노동형을 선고했다. 그가 마지막 변론에서 남긴 말은, 자기가 한 일은 모두 루마니아 인민을 위한 것이었고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한 문장이었다.
트란실바니아 설라지의 그리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변호사로, 헝가리 의회의 루마니아 민족당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18년 12월 알바이울리아 대집회 뒤 트란실바니아 지도평의회 의장으로 루마니아와의 통합을 이끌었고, 1926년 농민당과 합쳐 국민농민당을 세워 1928~30년과 1932~33년 총리를 지냈다. 카롤 2세의 개인 통치와 1938년 왕정 독재에 맞섰고, 안토네스쿠 시기에는 베사라비아 회복까지는 지지했으나 드네스트르를 넘는 전쟁에 반대해 1944년 8월 23일 쿠데타 준비에 참여했다. 전후에는 그로자 정부와 소련의 지배에 맞서는 야당의 중심이었고 1946년 선거 조작에 항의했다. 1947년 7월 당 지도부가 터머더우 비행장에서 국외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된 것을 빌미로 국민농민당이 해산되었고, 그는 10~11월 재판에서 「반역」 죄로 종신형을 받았다. 1953년 2월 시게트 감옥에서 80세로 죽어 표지 없는 무덤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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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10헝가리 의회 루마니아 민족당 의원
- 1918–1920트란실바니아 지도평의회 의장
- 1926국민농민당 창당
- 1928–1930총리
- 1932–1933총리
- 19448월 23일 쿠데타 준비 참여
- 1945–1947그로자 정부에 맞선 야당 지도자
- 1947터머더우 사건, 당 해산, 종신형
- 1953시게트 감옥에서 사망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의 정부 수반, 뒤에 「침묵의 시대」의 독재자
「우리가 이룬 가장 위대한 것은 에스토니아 국가의 창건이다」고 1940년 6월 승리절 연설에서 말했다.
1918년 2월 에스토니아 독립 선언을 이끌고 독립전쟁 첫 겨울 임시정부 수반으로 나라를 지켰다. 1934년 라이도네르와 함께 「침묵의 시대」의 권위주의 체제를 세웠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56년 구금 중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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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탈린 부시장 취임
- 1917에스토니아 자치주 임시정부 의장
- 1918구국위원회 위원, 임시정부 수반으로 독립 선언 주도
- 1921–1924국가원로(사실상 총리) 2회 역임
- 1934라이도네르와 함께 자기 쿠데타로 권위주의 체제 수립
- 1938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