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야네츠포딜스키·바비 야르·룸불라의 대량 총살을 지휘한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슈바르츠발트의 호른베르크에서 직물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싸웠다. 1929년 나치당, 1930년 친위대에 들어갔고, 1933년부터 브라운슈바이크의 경찰청장과 정치경찰 책임자를 지냈다. 1941년 6월 힘러에게 남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로 뽑혀 관할 지역의 아인자츠그루펜 학살을 모두 지휘했고, 카미야네츠포딜스키(2만 3600명)와 바비 야르(3만 3771명)의 대량 총살에 자신의 방식을 썼다. 11월 오스트란트로 옮겨 리가 유대인의 절멸을 명령받았고, 룸불라에서 이틀 동안 2만 5000명이 살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1945년 4월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리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46년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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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1918독일군 장교, 조종사
- 1929–1930나치당·친위대 입당
- 1932–1945제국의회 의원
- 1933–1938브라운슈바이크 경찰청장, 정치경찰 책임자
- 1941남부 러시아·우크라이나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 1941–1944오스트란트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 1946리가 재판 사형 선고, 처형
체코슬로바키아의 헝가리계 정치인에서 1944년 스토여이 내각의 내무장관이 되어 유대인 이송을 조직한 인물
헝가리 왕국 코마롬주 코마롬체히(오늘날 슬로바키아 체히)에서 태어나, 1920년대 초 트리아농 조약으로 떨어져 나간 펠비데크의 헝가리계 정치에 뛰어들었다. 1933년 헝가리 국민당 대표, 1935년 프라하 하원 의원이 되었고 통일 헝가리당 서기장을 지냈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헝가리 정부의 펠비데크 담당 무임소 장관을 지냈고, 1940년 임레디 벨러와 극우 정당 헝가리 쇄신당을 세웠다. 1944년 독일 점령 뒤 스토여이 내각의 내무장관이 되어 차관 버키 라슬로·엔드레 라슬로와 함께 유대인 이송을 조직했다. 8월 17일 호르티의 압력으로 물러났다. 전후 서쪽으로 달아났다가 미군에 붙잡혀 헝가리로 넘겨졌고, 인민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46년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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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1933헝가리 국민당 부대표
- 1933헝가리 국민당 대표
- 1935–1938체코슬로바키아 하원 의원
- 1938–1940펠비데크 담당 무임소 장관
- 1940헝가리 쇄신당 창당
- 1944내무장관
- 1946인민재판소 사형 선고, 처형
헌병대 출신의 국민사회주의자로, 1944년 내무부 차관으로서 엔드레 라슬로와 함께 유대인 이송을 맡은 인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사관학교를 나와 제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싸웠고, 1919년 세게드에서 폭력적인 반혁명 활동으로 이름을 얻은 뒤 헌병대 지도자로 떠올랐다. 1938년 헌병 소장으로 물러나 헝가리 국민사회주의당에 들어갔고, 1939년 의원이 되었으며 독일 자금의 신문 『머저르샤그』 편집인이 되었다. 1944년 독일 점령 뒤 내무부 정무 차관이 되어 엔드레 라슬로와 함께 유대인 이송을 맡았고, 4월 4일 아이히만 특무대와의 회의를 주재해 유대인 재산을 빼앗고 도시 게토로 옮긴 뒤 독일로 이송하기로 정했다. 여름에 해임되고 반호르티 쿠데타 모의로 체포되었으나 화살십자당 집권 뒤 국가보안국장이 되었다. 1945년 오스트리아에서 붙잡혀 넘겨졌고, 1946년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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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1918제1차 세계대전 장교
- 1919–1938헌병 장교, 소장으로 퇴역
- 1939–1944국회의원, 『머저르샤그』 편집인
- 1944내무부 정무 차관
- 1944–1945국가보안국장
- 1946인민재판소 사형 선고,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