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1840~60년대 나로드니키에 앞서 전제정과 농노제에 맞선 러시아의 급진 인텔리겐치야입니다. 망명지에서 《콜로콜》을 펴낸 게르첸과 오가료프, 비평가 벨린스키, 《무엇을 할 것인가》의 체르니솁스키, 도브롤류보프와 피사레프가 여기에 속합니다. 슬라브주의자, 자유주의자, 《이정표》의 종교철학자는 넣지 않았습니다.

6 명

소속 인물

비사리온 그리고리예비치 벨린스키

Виссарион Григорьевич Белинский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11–1848 ○ 폐결핵

러시아 급진 인텔리겐치아의 아버지로 불린 문학 비평가

러시아가 구원을 찾을 곳은 신비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니다. 계몽, 인도주의,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각성이다. — 고골에게 보낸 편지, 1847년

비사리온 벨린스키는 러시아 문학 비평의 창시자이자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급진 인텔리겐치아의 아버지'로 불린다. 모스크바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텔레스코프』, 『조국의 수기』, 『동시대인』 등 주요 문예지를 무대로 활동하며 푸시킨·고골·레르몬토프·도스토옙스키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헤겔 철학을 거쳐 사회주의로 나아간 그의 사상은 '문학은 사회를 위해 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집약되며, 이는 체르니솁스키와 도브롤류보프를 거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먼 선구가 되었다. 1847년 고골에게 보낸 서한에서 농노제와 전제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이 편지는 차르 검열하에서 필사본으로 유통되며 페트라솁스키 서클과 후대 혁명가들에게 지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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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9–1832모스크바대학 문학부 수학, 반농노제 희곡으로 퇴학
  • 1834『텔레스코프』지에 『문학적 환상』 발표로 비평가 데뷔
  • 1838–1839『모스크바 관찰자』 비공식 편집자
  • 1839–1846『조국의 수기』 수석 비평가, 러시아 최고의 비평가로 부상
  • 1841헤겔주의 '현실과의 화해' 단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사회주의자로 선언
  • 1846–1848네크라소프의 『동시대인』에서 비평 활동, 『1847년 러시아 문학 개관』 집필
  • 1847고골의 『친구와의 왕복서한선』을 규탄하는 공개서한 작성, 필사본으로 전국 유포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게르첸

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Герцен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12–1870 ○ 폐렴

러시아 농민사회주의의 창시자, 《종》의 발행인

「우리는 해방하는 자와 함께, 그가 해방하는 한 함께 간다」 — 1858년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을 환영하며 《종》에 게재한 논설에서.

러시아의 작가·철학자이자 '러시아 사회주의'의 창시자. 농민 공동체(오브시나)에 기초해 자본주의를 우회하는 사회주의 이행론을 정립했다. 런던 망명 중 발행한 《종》(콜로콜)은 개혁기 여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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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9–1833모스크바 대학 물리수학부 수학, 후보자 학위 취득
  • 1835–1842반정부 모임 혐의로 체포, 페름·뱟카·블라디미르·노브고로드 유형
  • 1842–1847모스크바에서 서구파 지식인으로 활동, 소설 《누구의 죄인가》 발표
  • 1847러시아를 영구히 떠나 유럽 망명
  • 1852런던 정착, 자유 러시아 인쇄소 설립
  • 1855–1868연감 《북극성》 발행, 푸시킨·레르몬토프의 금지시와 자유주의 논설 수록
  • 1857–1867주간지 《종》(콜로콜) 발행, 러시아 개혁 여론 주도
  • 1864–1870제네바에서 망명 출판 지속, 만년의 《과거와 사색》 집필 완성

니콜라이 플라토노비치 오가료프

Николай Платонович Огарёв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13–1877 ○ 사망

게르첸과 함께 《종》을 편집한 러시아 유토피아 사회주의 이론가

「우리는 이 언덕 위에서, 목숨을 바쳐 우리가 선택한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 1827년 참새 언덕에서 열다섯 살의 오가료프와 게르첸이 러시아 해방을 위해 나눈 평생의 맹세.

러시아의 시인·철학자이자 혁명적 민주주의자. 1827년 참새 언덕에서 게르첸과 러시아 해방을 위한 평생의 맹세를 나누었으며, 런던 망명 중 《종》(콜로콜)과 《북극성》을 공동 발행하며 개혁기 러시아 여론을 움직였다. 농민 공동체에 기초한 '러시아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비밀 조직 '토지와 자유'의 창설에 참여했으며, 귀족기에서 라즈노친치기 혁명운동으로의 이행을 이론적으로 매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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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9–1833모스크바 대학 물리수학부 및 윤리정치학부 수학
  • 1834–1839학생 서클 참여로 체포, 펜자 유형 및 주지사 사무실 근무
  • 1841–1846유럽 체류, 베를린 대학 수강, 첫 시 《Otechestvennye Zapiski》 발표
  • 1846–1856펜자 영지에서 벨로오무트 농민 1,800명 해방, 공동체 경영 실험, 첫 시집 출간
  • 1856–1867런던 망명, 게르첸과 자유 러시아 인쇄소·《종》·《북극성》 공동 운영
  • 1861–1863비밀결사 '토지와 자유' 공동 창설, 폴란드 봉기 지지
  • 1865–1877제네바 이주 후 런던 귀환, 바쿠닌 협력, 그리니치에서 사망

니콜라이 가브릴로비치 체르니솁스키

Николай Гаврилович Чернышевский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28–1889 ○ 뇌출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써서 레닌 세대를 만든 혁명적 민주주의자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2판 후기에서 체르니솁스키를 '위대한 러시아 학자이자 비평가'라고 불렀고, 엥겔스는 그와 도브롤류보프를 '사회주의적 레싱들'이라 칭했다.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가로, 『소브레멘니크』를 이끌며 유물론 미학과 농업사회주의를 정립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독방에서 쓴 『무엇을 할 것인가?』(1863)는 두 세대 혁명가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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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3『오체체스트벤니예 자피스키』 등에 첫 글 게재
  • 1855–1862『소브레멘니크』 실질적 편집장 — 혁명적 민주주의 기관지로 전환
  • 1855석사논문 『예술의 현실에 대한 미학적 관계』 — 유물론적 미학 선언
  • 1860『철학에서의 인류학적 원리』 — 포이어바흐적 유물론의 전개
  • 1862–1864체포·수감 —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독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집필
  • 1864민사처형 후 7년 카토르가형, 평생 시베리아 유형 선고
  • 1864–1883카다야·알렉산드롭스키 자보트 카토르가, 빌류이스크 유형 — 『프롤로그』 집필
  • 1883–1889아스트라한 귀환 허가, 사라토프 이주 — 만년 저술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도브롤류보프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Добролюбов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러시아 1836–1861 ○ 결핵

25세 요절로 러시아 혁명 세대 전체의 스승이 된 문학비평가

엥겔스는 1884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체르니솁스키와 도브롤류보프라는 두 사회주의적 레싱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 비평가. 체르니솁스키와 『소브레멘니크』에서 문학비평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만들었다. 엥겔스가 '사회주의적 레싱'이라 부른 그는 25세 요절 후에도 혁명 세대의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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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3페테르부르크 중앙교육학원 입학 — 지하 민주주의 서클 조직
  • 1854–1855부모 사망 후 급진적 반군주제·반농노제 시와 수기신문 『슬루히』 발행
  • 1856체르니솁스키·네크라소프와 만남 — 『상트페테르부르크 통보』에 첫 기사 게재
  • 1857–1861『소브레멘니크』 비평·서지부장 — 풍자란 「스비스토크」 주재
  • 1859「오블로모프주의란 무엇인가?」 — 곤차로프 소설을 사회비판의 도구로 전환
  • 1860「한 줄기 빛」·「진정한 날」 — 혁명적 민주주의 비평의 정점
  • 1860–1861결핵 치료차 유럽 체류 — 이탈리아 통일운동 취재, 귀국 후 사망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피사레프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Писарев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40–1868 ✕ 익사

부숴야 할 것은 부숴야 한다고 선언한 러시아 허무주의의 기수

「우리 진영의 최후통첩은 이것이다: 부술 수 있는 것은 부숴야 한다. 타격을 견디는 것은 살아남을 자격이 있고, 산산조각 나는 것은 쓰레기다. 어쨌든 좌우로 내리쳐라, 거기서 해는 나오지 않는다.」 — 『19세기 스콜라철학』(1861)

러시아 허무주의(nihilism)의 중심 이론가이자 1860년대 혁명적 민주주의 문학비평의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 체르니솁스키·도브롤류보프와 함께 60년대 급진 지식인을 대표했으며, 『러시아어』(Русское слово)의 주필로서 미학과 관념론 철학을 공격하고 자연과학에 기초한 '현실주의'를 주창했다. 1862년 반정부 선언문 필화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수감되어 4년 반 동안 주요 저작 대부분을 감옥에서 집필했고, 석방 2년 뒤 27세에 발트해에서 익사했다. '합리적 이기주의'와 '사고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으로 나로드니키 세대를 예비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라스콜니코프, 파블로프의 과학관, 레닌의 지적 형성에 결정적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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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8–1861여성잡지 『라스베트』(Рассвет) 서평 기고
  • 1860–1862『러시아어』(Русское слово) 비평가·사실상의 주필
  • 1862–1866반정부 선언문 필화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수감, 옥중 집필
  • 1866–1868『델로』(Дело)·『조국의 수기』(Отечественные записки) 기고